2022/04 3

고모부의 일기장

“아버지 일기 중에서...” 출근길에 사촌형의 카톡 문자와 사진 석 장이 전송돼왔습니다. 무심히 사진을 띄워보고 먹먹해졌습니다. 얼마 전 고모부가 돌아가셨습니다. 대구에 살던 어린 시절에 고모댁으로 가끔 놀러 가면 교사였던 고모부는 무뚝뚝하게 앉아 계시곤 했습니다. 책을 읽으셨던 것도 같습니다. 그 이미지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조카를 반기며 활짝 웃어도 주셨을 테지만 그런 기억보다는 ‘무뚝뚝하게 앉아’있던 모습이 상대적으로 선명하게 남았습니다. 이후 자라면서 부산으로, 다시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고모부를 뵐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편찮으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전화 한 통 드리는 것도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결국은 돌아가신 후에야 영정사진을 들여다보며 후회를 했지요. 한 통의 전화가 그렇게 ..

사진이야기 2022.04.26

벚꽃은 흩날릴 때가 절정이다

서울 여의도 벚꽃길이 3년 만에 전면 개방됐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벚꽃 철마다 통제됐던 곳이지요. 개방 사흘 만인 4월 12일에 찾은 벚꽃길엔 평일인데도 가족과 연인이 많았습니다. 만개한 벚꽃에 봄바람이 살랑하고 닿을 때마다 꽃잎이 흩날립니다. 걷던 이들이 탄성을 지릅니다. 일제히 휴대전화를 꺼내 들고 사진작가가 됩니다. ‘꽃비’는 움츠리고 지친 시간을 위로하듯 상춘객들의 어깨 위로 수시로 내립니다. 마스크 너머의 표정이 꽃처럼 환합니다. ‘벚꽃 엔딩’이라고 사진 제목을 붙이려다가 망설입니다. 벚꽃은 흩날릴 때가 오히려 절정인 것 같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 피는 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벚꽃잎이 휘날릴 때마다 다음 계절에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조금씩 커지는 것 같았습니다. /ㅇㅈ

봄은 왔지만...

건조한 겨울철에 큰 산불이 나면 봄기운이 찾아들 무렵 다시 산불현장으로 갑니다. 식목일을 앞두고 있다면 더 좋은 취재타이밍입니다. 상처가 여전한 현장을 돌면서 불 탄 자리에 자라난 풀이나 꽃을 찍곤합니다. 보통 '생명' '회복' '기대' 따위의 단어를 동원해 희망의 메시지를 욱여넣은 사진설명을 쓰지요. 산불 한 달만에 다시 찾아간 울진에서도 역시 검게 탄 야산에 핀 꽃을 찍었습니다. 다 타서 죽고 쓰러지고 베어질 숲에서 작은 꽃하나 찍었다고 희망을 말할 순 없었지요. 전형적인 사진과 설명을 극복하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금주의 B컷] 지난 4월3일 경북 울진군을 찾았다. 213시간이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동해안 산불이 발생한 지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북면 일대의 처참한 풍경이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