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미사 POOL 취재(취재인원이 많고 장소가 협소할 경우 구역이나 일정을 나눠 취재한 뒤 그 사진 또는 기사를 공유하는 것)에 제 명단이 올랐을 때 그리 반갑지 않았습니다. 이른 토요일 아침에 100만 명 운집이 예상된다는 곳에 그것도 일하러 가야하는 것은 천주교인도 아닌 제게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지요.
시복식을 며칠 앞두고 가톨릭 신자인 한 선배는 어디서 들었는지 저의 POOL 취재를 아주 부러워했습니다. ‘어디서 봐야하나, 볼 수는 있을까’ 걱정하더군요. 교인에게는 먼발치에서 점처럼 지나가는 교황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겠지요. 이런 주변 반응에 조금 자극을 받아 비교적 가까이서 교황을 볼 수 있는 것을 복이라 생각키로 했습니다.
시복미사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의 인파는 엄청났습니다. 취재 비표를 받아들고 자원봉사자의 안내로 미리 정해져 있는 좌측 취재단상에 섰습니다. 미사가 집전되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취재석인데 제단까지는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멀 뿐 아니라 제단의 네 기둥이 앵글을 방해했습니다. 카메라 앵글 고민 없이 단상을 만들었다며 투덜댔지요.
교황을 근거리에서 찍을 수 있는 ‘근접’ 완장을 담당 공무원이 나눠줬습니다. 좌우 단상 POOL 기자 중 내신 사진기자에게 배정된 완장은 석 장. 이도 미리 정해졌던 것인지 제가 있던 좌측 단상의 선배 두 분이 완장을 차고 인파 사이로 제단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잠시 후 길 건너 우측 단상에서 제단 접근이 불가능하다며 우측 단상 몫의 남은 근접 완장이 극적으로 제게 왔습니다. 원래 저의 몫으로 예정됐던 것처럼. 투덜댐에 대한 하늘의 답이었던 걸까요. ^^
교황청 직원의 지시 같은 안내에 따라 교황의 이동 경로에 따른 취재 위치에 섰습니다. 무개차를 탄 교황이 다가왔습니다. 교인과 시민들이 일제히 “비바 파파”를 연호했고, 교황은 이에 답하듯 좌우를 공평하게 돌아보며 손을 흔들고 몸을 숙여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아이들에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늘 보던 장면인데도 ‘바로 그 현장’의 느낌은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지요. 3자적 시각으로 기록되어야 하는 일과 당사자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장면에 빠져드는 상황 그 중간 어느 지점에 제가 있었습니다. 교황의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며 계속 그 표정을 지켜보았습니다. 누군가의 표정이 ‘평화롭다’고 말한다면 바로 이런 표정일 것이며 이제껏 누군가의 표정을 그리 표현했다면 그것은 거짓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았던 감동이, 아니 감동이라 단순히 표현하기엔 좀 아쉬운 무언가가 가슴을 뻐근하게 눌러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 강론에서 “막대한 부 곁에서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하셨다지요. 이 문장에서 한국을 서둘러 찾은 이유가 읽혔습니다.
회사에 들어와 교황의 사진을 골라내면서 다시 한 번 울림이 있었습니다. 교황의 행보와 메시지가 우리 사회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사진에 담으며 느낀 단순한 감동을 넘어서는 무엇의 정체는 제가 받은 ‘위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