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어떤 장면은 ‘서둘러 셔터를 눌러라’ 명령을 합니다. 몸과 마음이 급해집니다. 흘러가버려 다시 담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그 ‘아쉬움’이 생각보다 짙기 때문입니다. 서둘러 자리 잡고 명령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일단 찍고 본다는 게 더 정직한 표현이겠지요. 경험적으로 이렇게 얻는 사진들은 신문에 쓸 사진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디 쓰냐구요? ㅋㅋ블로그에 씁니다. ^^
찍은 뒤에 무엇이 찍게 했는지, 왜 찍었는지를 다시 생각합니다. 그 ‘명령’은 장면을 기록하는 일에 익숙해진 몸의 명령인지, 움찔하고 순간적으로 느끼는 가슴의 요구인지도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을 노트북에 띄워놓고 다시 추궁합니다. 왜 찍었냐고. 찍은 당시의 상황을 세밀하게 더듬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모니터 위에서 보는 사진과 기억 속 현장 상황은 간극이 생기게 마련이지요. 찍을 당시의 절실함이 희미해진 곳에서 사진은 심심하고도 담담한 얼굴을 하고 저와 마주 봅니다. 사진이 무어라 답을 할 때까지 바라봅니다. 그러다보면 사진은 단어나 문장의 형태로 하나씩 말을 던집니다. 얘기를 풀어내는 것은 이미지인지, 저인지, 억지인지도 헷갈립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행진해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한 대학생과 교수, 시민들이 청와대 인근 유가족 농성장을 향해 걸으려다 경찰과 차벽에 막힌 상황. 돌아갈 길을 찾아 광장을 걸어 나오는 행진 참가자들의 모습에 알록달록 ‘분수쑈’가 한 앵글에 있습니다. 간절한 발걸음의 묵직함과 시원한 소리와 함께 흩어지는 물입자의 가벼움이 조화롭지 않습니다. ‘상황 파악도 못하는 분수.’ 사진을 찍는 바로 그때 제 등 뒤 시민 동조 단식농성장에서는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고, 때마침 통기타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지요. 분수는 노래 박자에 맞춰 물을 뿜는 듯 했습니다. ‘분위기 좀 아는 분수’··· 뭐 이런 얘기들이 들립니다.
한 장의 사진이 앵글 안팎으로 많은 것을 품고 있지만 다 보여주지는 않지요. 유추해 내기 쉽지 않지만 적게 보여주고 많은 걸 상상케 하는 것이 사진이라는 매체의 매력이지 싶습니다. 생각의 깊이와 글재주가 모자라 이 정도의 얘기만 들렸고 고만큼만 썼습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신문의 단신기사를 보고 장편소설 ‘도가니’를 썼다지요. 누군가는 이 장면을 보고 장편소설을 써낼 수도 있을 겁니다. 대학생, 종교인, 예술가, 정치인, 그냥 시민들, 기자, 심지어 이순신 장군까지. 등장인물들이 아주 짱짱하기 때문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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