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다큐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6년 전쯤 축제 현장 모습을 스케치해 다큐로 한 번 다뤘기에 이번에는 예술가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습니다. 참여한 수 많은 예술가 중에 어떤 예술가를 선택할 것인가, 긴 고민을 한 끝에 한 영화감독의 작업에 꽂혔습니다. 그는 프린지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즉흥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낯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포함해 그의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만나는 예술가들의 얘기를 엮어 담아보자는 생각에 미친 것이지요.
이참에 저도 예술가가 되어봅니다. ‘사진을 찍는 내가 영화감독이 파인더를 통해 찍는 예술가와 그 작업을 찍는다’ ‘예술을 담는 그 예술을 담는다’ 장고 끝에 닿은 개념이라 뭔가 그럴듯했고, 스스로 이 시도가 ‘예술적이다’라고 정의 내렸습니다. 마음 먹은대로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저의 유연하지 못함과 게으름이 제일 큰 이유였지요. 고민을 온전히 지면에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에 너무 힘이 들어가 있었던 것인가, 돌아보고 있습니다.
주위 선후배, 심지어 취재원에게도 엄살 부리듯 어려움을 많이 토로했던 취재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를 들고 만났던 이들이 더 진하게 남습니다. 신지승 감독, 강신우 작가, 뮤지션 자이, 기매리 연출가, 배우 조용경 등 멋진 예술가들을 알게 된 것. 그만큼 제 삶이 풍성해 졌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낯선 예술, 거리로 나오다
도시의 공허 메우는 비주류 예술가들의 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자~함께 외쳐요. 레디~ 액션”
어둠이 내린 서울 홍대앞 거리에서 영화감독 신지승씨(50)가 선창하자 시민들이 따라 소리쳤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길거리 영화제작> 현장이다. 이번 축제에서 공연을 펼쳤던 여성뮤지션 자이가 신 감독의 사인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기를 펼쳤다. 현장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시민들은 감독이 들이미는 카메라 앞에서 역시 즉흥적인 리액션 연기를 해내야 했다. 손이 모자란 현장에서 붐 마이크를 들고 슬레이트를 치는 것도 관객의 몫이었다. 그의 영화에는 전문배우도, 스태프도, 시나리오도 없다. 물론 출연료도 없다. 신 감독은 “이번 작업은 자본 없이 길거리에서 기획·제작되고 극장이 아니라 거리에서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대 인근 소극장 ‘예’. 연극집단 ‘아해프로젝트’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모티브로 한 <플랜B-두 덩치>를 무대에 올렸다. 주인공 용경이 산티아고를 여행하며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연출가 기매리씨(28)는 반복되는 대사와 소리, 강렬한 시각적 효과, 제한적이고 비현실적인 표현으로 관객을 낯설게 했다. 낯섦에 대한 화해의 제스처처럼 극중 배우는 수시로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였다. 당나귀 탈을 씌워 무대를 뛰게 만들고, 파티장면에서는 맥주병을 쥐어주며 춤을 추게 했다. 조용한 관객들 깊숙이 숨어있는 참여 욕구를 풀어내려는 시도다.
또 다른 축제공간인 서울월드컵경기장 ‘기적의 책꽂이’ 앞에는 예술가 강신우씨(31)의 설치·전시 퍼포먼스 <영원한 자막의 극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좁은 레드카펫 끝에 조그만 인디언 천막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관람객이 노트북 화면 위에 반복 재생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에서 마음에 드는 영문 이름을 골라 건반에 입력하면 강씨가 이를 음악으로 만들어 원래 자막 위로 흐르던 음악을 대체한다. 엔딩크레디트의 시 같은 형상이 아름다워 작업을 시작했다는 강 작가는 “퍼포먼스는 세상에서 잊혀지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은유며, 관객의 행위는 잊혀져간 자들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거리와 소극장 등 공연장에서 만난 프린지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실험하고, 장르를 넘어 교류하고, 관객들과는 소통을 시도했다. 비주류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창작과 꿈을 향한 열정이 흥청대는 도심 속의 공허함을 메워주고 있는 듯 했다. 1998년 ‘독립예술제’에 뿌리를 둔 민간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올해 16회째를 맞이했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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