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게이(남성동성애자)를 소재로 사진다큐를 했습니다. 지면에 담지 못한 얘기를 모아 4회에 걸쳐 부서 블로그에 취재기를 올렸습니다. 일간지 취재 시스템에서 제법 긴 시간을 들여 취재했고 그만큼 이야깃거리가 많았습니다.
당시 블로그에 혐오의 표현과 종교적 교리로 반박하는 댓글이 몇 있었습니다. 그중 또렷이 기억에 남는 글은 “당신, 게이지?”였지요. ‘내가 잘 써서 그랬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때 인연은 이어졌습니다. 가정의 달인 5월이고, 법과 제도로 인정되지 않는 ‘성소수자의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을 사진다큐로 다뤘습니다.
‘무지개집’은 다양한 성적지향의 입주자들이 모여 사는 집입니다. “다큐가 되겠는지, 얼굴도 익힐 겸 간을 보러 오라”는 초대를 받았습니다. 술을 마시며 떠들썩하다 다소 차분해진 시간. 그 자리에서 동갑이라 말을 튼 한 친구가 저를 가만히 보다가 “게이냐?”고 물었습니다. “난, 스트레이트(이성애자)”라고 하자, “왜 성소수자를 취재하느냐?”며 이어 물었지요.
좀 난감했습니다. 이미 취재 의도를 설명했는데 다시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지요. “언론은 소외받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와 약자들의 목소리를...”같은 틀에 박히고 고리타분한 얘기를 했습니다. 반응은 시큰둥했지요. 문득 생각했습니다. ‘약자’ ‘소수자’라는 말도 거슬렸을까. ‘강자’ ‘다수자’의 입장에서 너무 쉽게 던지는 단어가 아닌가 싶었지요.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적극 나서는 입주자들이지만, 불특정한 뉴스 이용자들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매체를 통한 커밍아웃인 셈이지요. 우리사회의 혐오를 댓글로 마주하고 상처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그런 혐오에 대적해 싸워줄 인권감수성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것이지요. 이 블로그를 통해 무지개집 입주자들의 용기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누군가 저더러 성소수자(게이) 전문이라고도 하더군요. 1년에 한 번쯤 기획지면에 쓸까, 말까 한데 말이지요. ‘안다’고 얘기하기엔 부끄럽고, 더 알려고 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어설픈 몇 장의 사진과 짧은 글로 성소수자 가족공동체의 얘기를 했습니다. 그저 보여주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자들이 ‘공기’처럼 누리는 권리를, 비이성애자들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성숙한 사회의 척도’라 믿습니다.
7년 전 낯설었던 질문이 기억납니다.
“왜 동성앱니까?”라 물었더니, 되물었습니다.
“왜 이성애자인지 스스로 물어본 적 있나요?”라고 말이지요.
[포토다큐] 달라도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의 울타리...성소수자 공동주택 ‘무지개집’ 사람들
경향신문 5월26일자 15면
지난 20일 ‘무지개집’ 입주자들이 1층 공동공간에 둘러앉았다. 전날 이사 온 입주자가 공용주방에 내놓은 독일제 주방용품과 방대한 1인 살림살이로 얘기는 시작됐다. 입주하게 된 사연들, 간밤의 꿈, 사랑과 이별, 선거와 투표, 집 보수공사 등의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주위를 맴돌던 반려묘 ‘온돌이(‘굴러온 돌’을 줄임)’가 나른한 하품을 해대는 동안 시끌벅적 수다와 웃음 속에 밤이 깊어갔다.
서울 망원동에 자리 잡은 ‘무지개집’은 성소수자들이 모여 사는 공동주택이다. 이 주거 기획에 참여한 전재우씨는 2011년부터 성소수자들의 공동체와 공간 그리고 주거 문제를 고민했다. “기존 집의 기능이 성소수자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안전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꿈꿀 수 있는 집이 필요했어요.”
전월셋집과 고시원을 전전하던 이들이 전월세금을 빼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턱없이 부족한 돈으로 전전긍긍하다 ‘주거문제를 공동이 해결하자’는 가치를 내세우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을 만났다. 모두 조합에 가입하고 입주자격을 얻었다. 조합의 도움으로 사회투자기금 융자를 얻고, 부지를 찾아 집을 올렸다. 2016년 “안전한 곳에서 남 눈치 보지 않고 재밌게 살아보자”며 입주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실험은 이제 만 2년을 넘어섰다.
현재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등의 성적 지향을 가진 13명의 사람들과 5마리의 반려묘가 함께 살고 있다. 전문직, 정당인, 예술가, 활동가, 취업준비생 등 직업도 다양하다. 나이는 20대에서 40대 후반까지. ‘생물학적’ 남녀 성비도 고려됐다. 지난 주말 성소수자가 아닌 비혼여성 영화인이 거주자 회의 끝에 ‘특혜(?)’로 입주했다. “잘 아는 분이라 모두 같이 살면 좋겠다고 하는데 비성소수자라 고민이었어요.” ‘킴(닉네임)’이 웃었다. 회의 결론은 이랬다. “비혼여성도 성소수자다!”
공동체와 공간을 깊이 고려한 무지개집은 구조가 복잡하다. 1층 ‘흥다방’은 회의, 파티, 바자회, 소규모 전시회 등을 여는 공용공간이다. 2층은 1인 가구들이 같이 쓰는 거실, 주방, 화장실과 5개의 작은 방이 미로처럼 배치됐다. 3층은 커플 가구와 위기에 처한 성소수자가 일시적으로 머물 수 있는 쉼터 ‘홍인재’가, 4, 5층에는 2인 단독 세 가구와 공용세탁실이 있다. 누군가 집의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담하고 귀여우면서 답답하다.”
각기 다른 습관과 기대를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집안 곳곳에 생활규칙과 청소당번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계단 및 공동청소와 쓰레기 수거, 외부인의 숙박, 세탁실과 공용공간 사용 등의 규칙을 세웠다. 그 외 필요사항은 입주자 회의를 통해 결정한다고 썼다. 끝에 두 문장이 생활의 핵심이다. “시시때때 연중무휴로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며 불편한 점이 발생할 경우에는 곧바로 소통한다. 각자 사생활을 존중하고 지켜준다.”
무지개집 사람들은 서로에게 울타리였다. 입주자들은 ‘성장’ ‘안정감’ ‘디딤돌’ ‘자양분’ ‘도전’ ‘꿈’ ‘기회’ ‘가족’ 같은 단어로 공동체의 삶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맏형인 전재우씨는 “시간이 지나, 이 집을 거쳐 간 친구들이 여기 살면서 얻은 것을 재산으로 멋지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공동체’가 무지개빛 꿈과 희망을 함께 일궈가고 있었다.
yoonjoong
'사진다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버거운 다큐 (0) | 2018.08.23 |
---|---|
'곰의 일' (0) | 2018.07.24 |
사진다큐의 완성은... (0) | 2018.01.30 |
정작 '꿀잠'은 내가 잤다 (0) | 2017.07.30 |
'광장 노숙' (0) | 2017.0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