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는 소재를 찾고 회의하고 결정하고 연락하고 일정을 잡으면서 시작합니다. 일단 취재원을 만나 얘기 나누고 카메라를 들면 웬만하면 다른 소재로 갈아타기는 어렵습니다. 대체로 어렵게 취재를 허락한 취재원에 대한 예의도 아니지요. 마감시간이 제법 남았는데도 이미 급해진 마음에 ‘이건 아니다. 다른 거 찾자’는 결단은 좀처럼 내리지 못합니다.
이번 다큐도 그랬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를 찍어보자고 시작했지만 머릿속에 미리 그렸던 그런 휴가는 없었습니다. 달리 전개되는 상황과 애초의 의도 사이에서 수시로 갈등했습니다. 어정쩡한 상태로 ‘이정도면 됐다’며 버릇처럼 합리화를 했지요.
결국 이주노동자의 ‘여름휴가’는 바다로 놀러가는 ‘하루짜리 캠프’로 대체됐고, 피하고 싶었던 평범한 기념사진이 메인사진이 되고 말았습니다. 반나절도 안 되는 해수욕장 나들이로 지면을 채울 수 없어 다음날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의 공간을 찾았습니다. 전날과 상반된 분위기를 끌어들이는 것이었지요. 좀 억지다 싶었지만 뾰족한 대안도 없었습니다.
명색이 사진다큐인데 사진이 상황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글을 위한 사진을 찍어 모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처음 기획한 그대로 결과물이 나오면 그것은 실패한 기획이라고 하더군요. 예상대로 되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며, 전혀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기대보다 좋은 결과물을 얻을 여지가 있다는 것이지요. 예민한 촉수로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찾아지는 것일 텐데 다큐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런 노력이 없다는 얘기겠지요.
머리가 굳어졌습니다. 더 알려고 하지 않고 경험으로 아는 수준에서 소재를 찾고 사진을 찍고 있는 겁니다.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게 아니라 후퇴하는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연차에 쌓인 경험으로 부딪쳐 볼 것도 피해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부서 막내였던 2002년 9월 ‘장애인이동권’으로 생애 첫 다큐를 했습니다.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습니다.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지면에 다큐가 게재된 날 아침 아시안게임 취재를 위해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편집국 오전 회의가 끝난 시간, 열차에서 당시 부장이셨던 노재덕 선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다큐 좋았어. 수고했어.” 3년차 때의 기억이 지금을 더 부끄럽게 합니다.
대체로 경험(연차)이라는 건 ‘내가 안다’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이지요. 안다고 생각할 때 고민과 질문은 사라집니다. 고민과 질문 없는 다큐를 하고 있는 것 같아 민망합니다.
yoonjoong
'사진다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이 가난을 알아?" (0) | 2018.10.08 |
---|---|
"둘이 묵으이 맛나네" (0) | 2018.09.26 |
'곰의 일' (0) | 2018.07.24 |
이런 가족 (0) | 2018.05.29 |
사진다큐의 완성은... (0) | 2018.0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