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카드에서 사진을 지우다 문득 ‘두 개의 의자’가 나란히 있는 컷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물을 찍기 전 노출을 보려고 대충 찍은 한 컷입니다.
평소 같으면 메모리카드에서 이미 지워지고 없을 사진이지요. 사라져 버릴 사진에 대한 갑작스런 애착이 생겨난 것인지 하여튼 지우지 않은 이 사진 한 컷이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듯 했지요. 가만히 들여다보니 인물이 부재한 공간이 어떤 인물을 어렴풋이 그려내고 있는 것 같았지요. 물론 제가 찍었으므로 저는 답을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 빈 공간에서 사진의 대상을 추리해 내는 것이 재밌을 것 같았지요.
앵글 내 공간과 사물을 읽으며 사진의 대상을 찾아가는 것이 게임 같네요. ‘두 개의 빈 의자’는 취재 대상이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인물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두 의자의 모양이 다릅니다. 앉을 이들의 관계를 짐작케 합니다. 적어도 동급은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지요. 하나는 등받이가 있고 하나는 없어요. 굳이 다른 의자를 둔 것은 등받이에 기대앉아야 하는 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인물의 나이와 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잘 보시면 등받이 의자가 조금 앞에 나와 있습니다. 이 의자에 앉을 이가 주인공이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지요.
바닥을 한 번 볼까요. 마룻바닥에는 파란색 테이프가 붙어 있습니다. 긴 선을 이루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이 공간은 연극과 관련된 공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닥 테이프는 출연 배우의 동선을 표시한 것입니다. 소품과 배경이 없으니 공연장이 아니라 연습실 정도의 분위기군요.
여기서 두 가지를 핵심적 힌트가 도출됩니다. 연극과 관계된 인물이자 연세가 많은 분. 그 대상이 상당히 좁혀지지 않습니까. 저 혼자만 재밌는 겁니까. ^^
관심 받지 못하고 버려질 사진이 이런 메시지를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소한 발견이 설레게 하는군요. 잘 모으면 재밌는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앞으로 사진 버리기 힘들 것 같네요.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