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다큐의 순서는 돌아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한 다큐를 해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그간 많은 기사와 사진이 나와서 다른 접근으로 사진을 담아내기엔 부담스러우면서도 막연했습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고로 안타깝게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방을 떠올렸습니다. 아이들이 꿈을 키우던 방을 사진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했지요.
여기서부터 다시 여러 문제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습니다. 아이의 방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둔 부모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가능했지만, 부모들에게 어떻게 다가가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인가. 또 방이라는 공간으로 의미가 전달 될 수 있나. 기존 다큐에는 대체로 사진 앵글 내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인물의 행위가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저 공간을 담은 사진은 낯설 것이 분명했습니다.
사건을 전담해 취재해온 사회부 후배들을 괴롭혔습니다. 몇몇 학부모들에게는 다큐 취지를 장문의 문자로 보내기도 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마감은 다가오고 '과연 이 다큐를 할 수 있을까'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마감을 며칠 앞둔 금요일. 희생된 아이들을 나비로 표현한 작품으로 전시회를 가진 한 학부모를 만났고, 저의 취지를 이해해주신 이 분이 같은 반 엄마들을 설득하고 섭외해 주셨습니다.
소진이, 주희, 한솔이의 방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아이들이 없는 공간에서 더 크게 아이들이 느껴졌습니다.
취재하고 집을 나서는 제게 한 아이의 아빠가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기울어진 배 안에서 아이들은 벽과 선반 등을 잡은 채 버티고 있었고 그 옆에 밖으로 향한 문이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문을 통해 바깥의 햇살이 들이쳤습니다. 아이의 아빠가 긴 한숨과 함께 보여준 이 사진 한 장이 빚을 진 것처럼 가슴에 박힙니다.
yoonjoong
포토다큐 '세월이 간다해도... 그리움이 잊힐까... 기억할게 너희들을'
# 이소진의 방
"소진이 누나 사랑해. 돌아와"
소진이는 일찍 출근하는 엄마를 대신해 띠 동갑 남동생을 꼬박꼬박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등교 했다. 친구들이 “동생 때문에 너의 인생은 없다”고 할 정도로 동생을 보살폈다. 소진이의 방 책상 위에는 소진이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초를 켜 놓고 딸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 여섯 살 난 동생은 엄마를 졸라 종이학을 만들어 누나 사진 앞에 놓았다. 글씨를 삐뚤빼뚤 쓰기 시작한 어린 동생은 어린이집에서 ‘소진이 누나 사랑해’를 수시로 써 온다고 했다. 책상 한켠에 소진이의 중학교 친구들이 소진이의 사진을 안고 다정하게 기념 촬영한 사진을 보며 엄마는 눈물을 훔쳤다. 소진이는 이 작은 방에서 유치원 교사의 꿈을 키웠다.
# 김주희의 방.
주희의 버릴 수 없는 흔적들
주희는 ‘마마걸’이라 불렸다. 엄마가 걱정할까 수시로 전화하고 일찍 귀가하는 착실한 외동딸이었다. “우리 주희는 과학도 좋아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지었어요.” 다재다능한 주희는 엄마의 든든한 자랑이었다. 엄마는 딸의 방을 치우지 않았다. 주희의 미술 작품과 그림, 과학경연대회 출품 모형 자동차, 수학 참고서 등이 책상 위에 그대로 놓였다. 의자에는 체육복이 걸려 있었다. 엄마는 작은 메모까지 딸의 모든 흔적을 모아 간직했다. 상장을 모은 스크랩북 속에 엄마의 이름을 한자로 반복해 쓰고 ‘엄마 사랑해’라고 알록달록 그려 넣은 연습장을 보여주며 엄마는 울었다. 주희는 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지만 엄마 고생을 덜어주려고 의사가 되겠다고 했다.
# 강한솔의 방.
한솔이 기다리는 고양이
한솔이의 방 책상 위에는 고양이 ‘라온’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2년 전 한솔이가 데려와 키웠다. 한솔이 앞에 늘 그 자세로 있었다고 했다. 한쪽 벽에는 한솔이의 이름이 새겨진 교복이 걸려 있었다. 엄마는 49재 때 옷가지를 모두 태웠지만 교복은 태울 수 없었다. “우리 아이는 욕심이 많은 노력파였어요. 공부도 운동도 잘했어요” 금세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살기 바빠 못 해준 게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대학병원 간호사 돼서 돈 모아 큰 집 사줄게. 엄마” 야무진 딸의 꿈이었다. 한솔이의 친구들이 휴대전화에서 뽑아준 한솔이의 사진 앨범을 넘겨보던 엄마는 “아직 실감이 안 난다”며 다시 눈물을 흘렸다.
소진이, 주희, 한솔이는 안산 단원고 2학년 10반 친구들이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소중한 꿈을 키우던 방은 주인을 잃은 채 그렇게 남아 있었다.
사진·글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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