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장에서는 사진가 노순택을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까맣게 탄 얼굴에 등산복과 등산화를 신고 스윽 나타난 그는 참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지요. 용산, 평택, 제주 강정, 밀양에서 그를 만났고 쌍용차 해고자들 사이에서도 그는 보였습니다. 그의 카메라는 대한민국 갈등의 현장에서 권력을 조롱하고 권력의 반대편에 있는 이들을 어루만집니다. 언론이 뜨겁게 모였다 빠져나간 곳에서도 그의 카메라는 머물러 있습니다. 어느 밀양 송전탑 관련 문화제에서 사회자가 “노순택 사진가도 함께하고 계십니다”라는 멘트를 할 정도입니다. 사진을 ‘업’으로 하는 직업인이지만 활동가이기도 한 것이지요. 금세 떠나버리는 사진기자보다 머물러 함께하는 사진가의 카메라가 더 믿음직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노순택 작가가 평택 대추리에서 살며 기록한 ‘얄읏한 공’을 보았습니다. 발상이 재밌고 사진과 글에 스며있는 특유의 위트에 무릎을 치면서도 묵직한 메시지가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짙은 여운이 남았습니다. 여운은 모방을 부릅니다. 저는 그의 발상을 그대로 베껴서 오가며 어디서나 고개를 내미는 서울의 상징, 남산타워를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작업인데 그처럼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없어서 사진만 모으고 있습니다.
그의 사진은 주변부는 어둡고 플래시를 먹은 피사체만 도드라져 보이거나 강렬한 실루엣, 넓은 공간 등이 많아 신문 사진에 익숙한 제겐 낯설었습니다. 또 차가워 보이기도 했구요. 하지만 일련의 작업과 사진 한 장 한 장에 그가 풀어놓은 글을 보면 정말 ‘뜨거운 고민’이 관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가운 사진에서 그의 뜨거움을 느끼는 것이 저만의 개인기는 아니겠지요. ^^
사진가 노순택이 한국 현대미술의 위치를 가늠하는 ‘올해의 작가’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사진가로는 처음입니다. 주목받는 예술가 4명이 후보에 올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무능한 풍경의 젊은 뱀’이라는 제목으로 그간의 작업과 신작을 선보입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대해 얘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유능한 기기로 보이는 카메라는 프레임 바깥을 보여주지 못하고, 앵글 속 사진은 한국사회의 갈등 해결에 무능하다’ 정도로 해석해도 되는지 작가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제게 올해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참 신기한 일입니다. 놀랍게도 늘 저 멀리 닿지 않는 곳에 존재하던 현대미술이 조금은 다가온 느낌입니다.
사진을 하는 사람이 후보에 선정된 사실만큼 흐뭇한 것은 소위 ‘뜬’ 사진가 노순택은 또 어느 현장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검은 등산복과 낡은 등산화를 신고 나타날 거라는 것과 통인시장 어느 골목에서 동료 사진가들과 늦은 밤까지 사진 얘기하며 막걸리 잔을 부딪칠 것이라는 겁니다.
전시는 11월9일까지 열리구요.
전시된 사진 중에 제가 모델인 사진도 있으니 찾는 재미까지. ^^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