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사진 찍어보셨나요?
지난 29일 밤 야근 중에 번개가 내려쳤습니다. 번개 칠 때의 행동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사무실 창을 열고 카메라를 하늘을 향해 고정시킵니다. 그리고 릴리즈를 이용해 저속으로 촬영합니다. ‘똘똘한 놈 하나만 걸려라’는 심정으로 반복해서 셔터를 누릅니다. 창을 열면 저만치 서울N타워가 보여 다른 앵글을 찾아 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한 자리에서 우직함만이 필요한 작업입니다.
하늘을 가르는 번개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눈에 본 대로 사진에 새겨지지도 않고 셔터 타이밍을 놓쳐 눈으로만 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기술이나 경험보다는 운에 '잘~' 기대는 것이 최선입니다. 단순 반복 셔터질을 하다 문득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 물었습니다. 복잡한 작업이었다면 끼어들 수 없는 '내 안의 태클’이었습니다. 그저 번개가 치면 선배들이 그리했던 것을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왜 찍을까? 태풍이나 폭우처럼 큰 사고나 피해를 유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희귀한 자연현상도 아니지요. 평균적인 사람들이 무지개를 대하는 자세와 번개를 보는 태도는 다릅니다. 무지개의 설렘이 번개에는 없습니다. 또 ‘아름다운 번개’라고 글로는 쓸 수 있지만 ‘아름다운 무지개’와 달리 왠지 낯설어 형용모순처럼 느껴집니다. 그럼 포착의 우연성과 까다로움 정도만 남는데, 이것이 사진을 찍어야하는 이유라면 좀 허무해 집니다.
번개 치는 밤하늘을 보며 지금 이 순간 '벼락(번개가 땅에 떨어지는 것)'이 두렵거나, 조심해야 할 사람들이 있겠지 생각했습니다. 저 번쩍이는 하늘아래 서면 ‘난 벼락을 맞지 않을 사람인가’를 묻게 되더군요.
부실한 번개 사진 한 장 내밀면서 말인지 잠꼬댄지 주절대는 건, 지금 비가 오기 때문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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