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입니다. 아련한 생각에 잠기게 하는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비 오는 날엔 무슨 생각들 하시나요? 저는 잠에서 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며 이 비를 어디 가서 어떻게 찍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가을비가 우울한 것이 아니라 비를 보며 일을 생각하는 저의 상황이 우울한 것이지요. 제가 유별난 게 아니라 날씨에 민감한 보통 사진기자들의 습관입니다.
수시로 내리는 비지만 다 같은 비가 아닙니다. 비라는 것도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따라 의미와 때론 이름을 갖습니다. 어제의 비는 막바지 더위를 물리고 추위를 부르는 비였지요. 추위 끝에 오는 반가운 봄비, 애잔한 감성을 부르는 가을비, 지긋지긋한 장마나, 물난리를 일으키는 기습 폭우 등 계절과 비의 성격을 따져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지요. 모두 날씨에 민감하지요. 그래서 계절을 따지지 않고 비가 그날 사진 뉴스거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지요. 한가로운 비 사진이 딱딱한 글 뉴스들 사이에서 휴식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어제 비 스케치는 제가 먼저 나서서 맡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자원 등판'이라고 합니다. 이화여대로 향했습니다. 왜 거기냐구요?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냥 거기부터 가야할 것 같았습니다. 어딘가에서 본 우산 든 학생들의 이미지가 어슴푸레 머릿속에 남아서일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모르겠습니다. 비도 오는 듯 마는 듯하고 사진이 잘 되지 않았지요.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는 순간, 기적처럼 빗방울이 굵어지고 대강당 앞 계단에서 우산을 받쳐 든 여학생들이 우르르 몰려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It's raining men'이 아닌 ‘It' raining women Hallelujah'를 불러야 하는 설레는 순간이었지요. 셔터를 누르면서 중절모 신사가 떼로 내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겨울비(골콩드)>가 떠올랐습니다. 뭔가에 끌려 왔던 것의 정체가 이것이었구나, 했지요. ^^
다음 스케치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코스모스 흐드러진 구리한강시민공원. 가을비와 코스모스가 오늘의 비에 맞은 이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raining women’과 ‘코스모스와 가을비’ 두 종류의 비 스케치를 마감했습니다. 무슨 사진을 썼을까요?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