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가르쳐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주제넘게 받아들였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얘기해볼까 하다가 ‘그 방법을 알면 너부터 잘 찍어라’는 제 안의 질타에 즉시 접었구요. ^^ 그리하여 첫 시간에는 주어진 빛에 적정한 노출을 얻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감도와 조리개, 셔터를 잘 설명해야 했지요. 제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지만 이걸 초보자인 친구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더군요. 먼지 쌓인 채 방치된 사진서적도 들춰 보았습니다. ‘감도(ISO)’가 ‘감광속도’의 줄임이라는 것을 민망하지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심했습니다. 내 수족처럼 다룬다 생각했던 카메라를 나는 제대로 알고 쓰는가, 누군가에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등등.
감도, 조리개, 셔터를 각각 설명하고 서로의 관계를 수치로 쓰고 그려가며 얘기했습니다. 혼란스러워 보였습니다. 그게 당연한 일이지만, 속으로는 빠른 이해를 강요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미안해졌습니다. 예전에 저도 사진을 시작하며 이런저런 설명에 머리가 복잡하던 중 ‘피사계심도’라는 용어를 듣자마자 옛 ‘오언절구’의 한 구절을 대하는 것처럼 눈앞이 까마득해졌던 기억이 나더군요.
이런저런 기억들이 꼬리를 물다, 사진부 배치 받은 날의 기억에 가 닿았습니다. 지금은 퇴직하신 당시 부장께서 오랜만에 받은 후배인 저를 위해 박스도 뜯지 않고 고이 모셔둔 ‘니콘F4’를 꺼내 주셨지요. 선배들이 카메라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주던 기억이 가물가물 살아났습니다. 사물함에 아직 간직하고 있는 입사 후 저의 첫 카메라를 꺼내 보았습니다. ‘니콘F4’와 현재 쓰고 있는 ‘니콘D4’는 필름과 디지털이라는 간극만큼이나 제 짧지 않은 기자로서의 세월과 변화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나의 과거와 현재의 분신인 두 카메라를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어주었습니다. 마치 기념사진을 찍어 주는 것 처럼요. 각각 사물함의 아랫칸과 맨 윗칸을 차지하는 이 카메라들을 나란히 둔 것은 처음입니다. 순간 카메라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은 뒤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보았습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요. 저는 제 개인의 역사를 사진에 담은 것이었네요. ㅎㅎ
여하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의미있는 과정이기도 하네요.
그나저나 저의 어설픈 가르침에 친구의 사진에 대한 관심과 재미가 꺾이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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