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힛팅수 경쟁

나이스가이V 2013. 9. 5. 08:00

컴백 가수의 쇼케이스를 난생 처음 취재 간 저는 행사장 입구에서 낯익은 타사 후배의 얼굴이 보이자 반가워서 외쳤습니다. "나 좀 케어 해줘~!" 후배는 프레스카드를 수령하는 절차와 무대 앞에 자리 잡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혼자 못할 것도 없지만 뻘쭘함에 늘 이런 식의 민폐를 끼칩니다. 

 

한 시간 반 전에 추첨을 통해 자리배정은 이미 끝나 있었구요. 사진, 영상, 취재기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요대부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간간이 앉은 아는 선후배들과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산만한 저 양반은 누구야?’하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걸그룹 카라가 등장해 새앨범 타이틀곡 숙녀가 못 돼를 선보일 때 셔터를 누르면서도 곡 사이사이에 쇄도하는 셔터 소리가 연주의 요소인듯 섞여 들렸습니다.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모두 노트북에 코를 묻습니다. 온라인 실시간 마감에 돌입하는 것이지요. 미리 캡션을 써 두는 것은 기본이죠.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사진기사의 힛팅수경쟁은 치열합니다.

 

 

빨리, 많이, 길게 올리는 것에다 기왕이면 자극적인 제목까지 갖춰지면 힛팅수 승패에 유리한 고지를 점합니다. 뒤질세라 저도 노트북을 열고 사진을 웹에 열심히 쏘았습니다. 올리기가 무섭게 저의 사진은 수많은 경쟁자들의 사진들에 묻혀 버립니다. ‘빨리올리는 것에서 이미 밀렸고, ‘많이의 기준을 가늠 할 수 없고, 심지어 다음날 아침까지 꾸준히 길게올릴만한 그런 사진도 지구력도 제겐 없습니다. 그럼 좀 제목이라도 달아야 하건만, ‘뒤태’ ‘섹시’ ‘아찔이런 단골 단어들을 쓰는 것에도 우물쭈물 댑니다. 여러 박자가 고루 갖춰져야 할 온라인 경쟁에서 저는 이길 재간이 없네요. 수많은 기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기사를 올리다보니 카라는 포털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장시간 올려져 있더군요. 같이 먹고 사는 일이기는 하지만 기자들이 기획사의 홍보 전위대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고상한 사진 찍기와 우아한 사진 마감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마는, 이런 일련의 속도 경쟁이 고민의 시간조차 아까워하며 셔터를 눌러대게 하고, 급기야 내가 기계가 되어야 하는구나하는 회의감을 불러들입니다. 10여 년의 현장 경험과 노하우도 전혀 끼어들 여지가 없는 생소한 현장에서 고민합니다. 나는 도태될 것인가, 시스템에 몸을 맞춰 세게 붙을 것인가.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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