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아이 사진 한 장의 파장이 큽니다.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야근을 하던 지난 9월2일 밤 아일란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송되는 외신사진 전용 화상데스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야근 일 중 하나지요. 이 사진이 시선을 잡았던 건 물가에 엎드린 채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 얼굴에 파도가 밀려와 닿아 있어 아이의 죽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캡션을 확인하고 사진을 반복해 보면서도 지면에 이 사진을 쓰자는 말은 꺼내지 못했습니다. 외신으로 수없이 봐 온 난민 사진 중 조금 더 아픈 사진쯤으로 보고 넘겼던 것이지요. 또 아이의 주검사진을 신문에 쓸 수 있을까, 하는 나름 경험적 판단이었습니다.
다음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 등 유럽 국가들의 신문 1면에 이 사진이 실렸고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우리 신문은 세계가 들썩인 다음날인 4일자에 아이가 작게 나온 사진에 모자이크를 한 채 소식을 전했습니다. 국제면에 실린 사진을 보며 원본에 없던 모자이크를 굳이 해야 했을까 싶더군요. 노골적인 참혹함을 보이지 않으려 했다면 사진을 게재하지 않는 것이 옳았을지 모릅니다. 모자이크를 해도 비극이 가려지진 않습니다. 이틀 전 야근할 때 왜 이 사진을 적극적으로 밀지 못했을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도 똑같은 판단을 했을 것 같습니다.
이 사진으로 인해 난민 수용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일부 나라들은 난민 대책을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사진 한 장’이 세상을 움직이는 일은 그리 흔치 않습니다. ‘백 마디 글보다 한 장의 사진’이라는 상투적 표현은 그런 사진 한 장 얻기가 참 어렵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꼬마 아일란의 사진이 영향력을 발휘하기까지 과정을 짐작해보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터키 도안 통신의 닐류페르 데미르라는 사진기자가 휴양지인 보드룸 해변에서 아이의 주검을 만납니다. 이 죽음의 비극을 알리기 위해 정신없이 기록했던 사진 중에서 세심하게 몇 장의 사진을 골랐을 테지요. 모자이크도 없이 사진을 발행한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이 비극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던 기자의 결단에서 ‘한 장의 사진’은 시작된 것이지요. 기자가 속한 통신사의 편집책임자의 결단도 한 몫 했습니다. 이 통신 사진을 받아 1면에 크게 게재한 신문사들의 편집자의 판단도 세상을 움직인 ‘이 한 장의 사진’에 지분이 있습니다. 그런 일련의 용기와 결단의 합에 의해 ‘사진의 힘’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지요.
사실 난민의 목숨 건 탈출과 죽음을 담은 사진은 이전에도 나왔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미디어를 통해 생산되고 있습니다만 아일란의 사진만큼 파급력을 지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사진을 기록한 사진기자 혹은 사진가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지요.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은 개별적인 사연을 획득했지만 다른 사진들은 난민을 기록한 수많은 사진이라는 집단적 개념으로 처리되는 게 아닐까요. 저 먼 시리아와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내전과 그로인한 난민의 고통과 비극이 온전히 공유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이미 익숙한 사진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하게 만듭니다.
아이가 아닌 어느 어른의 주검이었다면 혹은 좀 더 비참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해변에서 발견되었다면 그 사진기자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사진을 타전했을까. 또 그 사진이 발행되었다면 아일란 쿠르디의 사진처럼 유럽 국가들의 난민 대책을 흔들 수 있었을까. 아마 그러지 못했을 거란 생각입니다. 난민 아이의 죽음과 어른의 죽음이 다른 얘기를 전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처참한 비극과 무감함 사이에서 사진은 일면 무력해 보이기도 합니다. 사진 한 장의 위력을 새삼 깨달으면서도 같은 메시지를 던지며 수없이 생산되었다 사라져버린 사진들을 생각해 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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