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숭례문 사라지다

나이스가이V 2008. 2. 14. 18:18

야근날이었던 10일  밤9시.
와이티엔 화면에 숭례문에 불났다는 짧은 속보가 떴지요
소방차가 진화작업 중이라는 보도와 함께요
몇 년전 낙산사 화재의 경험이 떠올라 반사적으로 튀어나갔습니다
숭례문 옆에 사옥이 있는 와이티엔 빼고 신문중엔 제가 젤 먼저 도착했었지요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여러대의 소방차들이 물을 부어대고 있었습니다
빨간 화염이 보이지 않아 오래지 않아 꺼지리라 생각했지요

급히 찍은 뒤
부장께 보고하고 회사에 마감하러 들어갔지요
퇴근한 부장이 다시 회사로 들어오면서 "나가서 상황을 계속 지키보라"는 지시가 있었지요

다시 나간 현장
연기는 조금전과 다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지요
기자들과 모여든 시민들은 "저렇게 불이 안꺼지나"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렸고
붉은 화염이 기와밑으로 고개를 내밀때는 탄식에 가까운 함성을 내뱉었습니다

소방호수에서 숭례문의 불길에 닿았다 바닥에 떨어진 물은 매캐한 탄내를 품고 있었구요
이내 흥건히 고인 물에 젖어 어는 듯은 발을 구르며 그렇게 수 시간을 지켜봤습니다
불이 잦아들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어느덧 기왓장을 밀고 올라온 불이
숭례문 전체를 감쌌습니다

마감시간과 무너질 시간 사이에서 안타까움과 초조함이 교차했습니다
불은 그 맹렬한 기세를 더해갔지요
무너질 것에 대비하는 소방관과 경찰의 움직임이 보였지요
무너지길 바랄 수는 없었지만, 또 절대 그래서는 안되지만 
이왕 무너지려면 최종판 마감내에 무너져야는데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점점 더 심각해져가는 상황을 담은 사진을 차편을 통해 두 차례 회사로 보냈습니다
사진 최종마감시간이 넘어가는 새벽 2시에 가까운 시간
굉음을 내며 육중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기와와 목재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 "주위엔 기자들과 시민들의 탄식이 일제히 흘러나왔습니다

역사의 현장을 지키는 '사진기자' 라지만
이날은 '역사가 사라지는 현장'을 고스란히 지켜본 안타깝고 씁쓸한 날로 기억될 겁니다

[NIKON CORPORATION] NIKON CORPORATION NIKON D3 (1/250)s iso2000 F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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