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퍼포먼스 사진을 찍습니다. 구호 외치고 회견문을 읽는 평범한 그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진기자들을 위해 소위 상징적인 그림을 만들어주는 주최자의 정성입니다. 그 퍼포먼스는 회견 마지막 순서라 기자들을 회견 내내 붙잡아둘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경험 많은 기자회견 주최측과 사진기자의 암묵적 거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10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세척작업을 찍으러 갔다가 예정에 없던 기자회견을 찍게 된 것도 진행자의 “퍼포먼스가 있다”는 말에 솔깃했던 겁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얼굴 가면을 쓴 이가 수의를 입고 무릎을 꿇은 퍼포먼스였지요. 우 전 수석의 영장실질심사를 하루 앞두고 있어 이보다 시의적절한 퍼포먼스는 없었지요. 구호보다 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습니다.
11일 밤 우 전 수석이 영장심사를 받은 뒤 영장 발부 여부를 기다리고 있던 서울중앙지검에 갔습니다. 신문 마감을 위해 "우 전 수석이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사진설명을 미리 써 두었습니다. 밤 12시가 넘자 구속영장 기각 소식이 들렸습니다. 검찰청사 계단 앞에는 구치소행 차량이 아닌, 그를 늘 태워 나르던 가족회사 ‘정강’의 검은색 세단이 기다렸습니다.
새벽 1시쯤 우병우는 검찰 출입문을 밀고 유유히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 지친 기색 없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와 기다리던 차량을 타고 귀가했습니다. 질문하는 기자들에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했다지요.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을 마감하면서 이틀전 광화문광장에서 찍은 ‘퍼포먼스’가 겹쳐졌습니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검찰 문을 열고 집으로 향하는 우병우의 모습이 훨씬 더 ‘노골적인 퍼포먼스’처럼 느껴졌습니다. ‘역시 황제 수사 퍼포먼스’ ‘검찰의 수사 의지 없음 퍼포먼스’ '한통속 퍼포먼스' ‘검찰개혁을 부르는 퍼포먼스’였지요.
박근혜, 이재용도 피하지 못한 구속수사를 우병우는 두 차례나 피했습니다. 검찰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네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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