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카메라를 든 현장에서 무언가 ‘훅’하고 꽂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곧 이러저러한 생각과 연결되기도 하고 그 이유를 찾다 때론 비약으로 흐르곤 합니다.
어제는 현장에서 ‘마네킹’에 꽂혔습니다. 소방기술경연대회에 소품으로 동원된 마네킹이었지요. 부상자 대역의 묵직한 마네킹이 '참 고생이 많다' 싶었습니다. 참가자들은 흙바닥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마네킹을 안아서 끌고 저만치 약속된 구역까지 가서 버리듯 내려놓았습니다. 실제 사람이었다면 그리했을 리 없겠지만, 시간측정으로 순위를 매기다보니 마네킹을 패대기 칠 수밖에 없어보였지요. 흙먼지 속에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꼬였습니다. 대회 진행요원들이 제자리로 가져다놓기를 반복했습니다.
왠지 모르게 짠했습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겠지요. 마네킹을 카메라에 몇 컷 담았습니다. 이 ‘난데없는’ 충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내 무의식일까 싶기도 하고, 현재 내 모습의 투영일까 싶기도 했습니다. ‘불 꺼진 쇼윈도의 마네킹’으로 사진작업을 한다는 누군가의 수년 전 얘기도 떠올랐고, 자동차 사고 실험에 동원된 ‘더미’에 주목했던 한국일보 기획기사도 떠올랐습니다.
또 "작은 유리방 안이 답답해~ 사람들 시선 이젠 싫어~ 메마른 웃음만 남아 자꾸 슬퍼지는 마네킹~~" 가수 현진영이 슬픈 가사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댄스를 곁들였던 추억의 노래 '슬픈 마네킹'도 흥얼거려졌지요. 결국 서둘러 찾아온 더위가 충동의 가장 유력한 원인이 아닐까, 결론지었습니다.
이날 행사를 보며 '인간 대행' 마네킹에 눈을 그려 넣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시선을 마주칠 리 없기 때문이지요. 귀와 입을 그리지 않은 것도 마네킹에 대한 혹은 이를 다루는 사람에 대한 배려인 것 같습니다.
그 ‘짠함’이라는 것이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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