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강기자님...혹시...?"
"아니요. 저는 '일반'입니다"
공연을 앞둔 게이합창단 G_Voice의 연습을 취재하고 뒷풀이 자리에 끼었습니다.
처음 본 한 여성 객원 단원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습니다.
1년 반 전 '게이'에 대한 사진다큐를 한 뒤 형·동생하는 게이 친구들이 좀 생겼습니다.
게이는 일간지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는 소재중 하나지요.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게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내 유일의 게이합창단을 다큐 소재로 잡았습니다.
연습실을 찾은 첫 날.
"여기 경향신문 강윤중 기자입니다. 아쉽지만 '일반'이예요."
"아~~" 단원들은 아쉬워하는 감탄사로 저를 반겨 주었습니다.
지난해 인연으로 단원의 3분의 1정도는 낯이 익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뒷풀이 자리에서 스스럼 없이 웃고 어울렸던 것이지요.
'이반'이라는 의심을 받을 만도 하죠.
이날 술자리에서만 세 번 쯤 같은 추궁(?)을 받았고, 저는 세 번 부인했습니다. ^^
다수가 게이인 뒷풀이 자리에서 유일한 이성애자인 저는 '성소수자'였지요.
우리 사회에서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로 일컬어지는 성소수자들의 삶은 버겁습니다. 약자 중에서도 법과 제도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부류입니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간헐적으로 그 삶이 보여지지만, 현실의 벽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다르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이 현실에서는 인정되고 있지 않지요.
G_Voice의 정기공연이 지난 10일 종로의 한 극장에서 열렸습니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장내 스피커로 음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객석에는 LGBT 분들, 이성애자 분들, 스스로 이성애자라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앉아있습니다"
관객들의 큰 웃음을 유발하며 공연은 시작됐습니다.
손 맞잡고 외칩니다, 동성애도 사랑이라고
‘만루(닉네임, 25)’는 게이다. 늘 소외감을 느끼며 살았다는 그는 8개월 전 게이합창단 ‘지_보이스(G_Voice)’에 가입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단원들과 함께 어울리고 노래 부르며 생각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만루는 지난해 처음으로 자신이 게이임을 고백했던(커밍아웃) 두 명의 친구를 ‘지_보이스’ 공연에 초대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 친구에게 “내 얘기야. 들어줘”라고 문자를 보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제7회 지_보이스 정기공연 <체인G>’. 극장 내 300석의 객석이 가득 찼다. 객석에는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상당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It’s raining man‘으로 시작한 공연은 단원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나에게 가는 길’, ‘사랑은 하루도 사랑’, ‘수렁에서 건진 나’, ‘엄마, 아빠가 변했어요’ 등으로 이어졌다. 가사에는 게이의 삶이 오롯이 담겼다. 어렵고 두렵지만 한 걸음씩 자신에게 다가가며 얻는 변화의 기쁨, 서로에 대한 위로, 사랑과 행복을 진지하게 혹은 유쾌하게 풀어냈다. 노래에 곁들인 안무는 보는 재미를 더했다. 특히, ‘엄마, 아빠가 변했어요’의 가사를 쓴 아들의 공연을 보러 온 아버지가 무대에 올라 “우리 아들 정말 착하다. 내가 보증한다”며 관객들을 향해 아들 대신 구애해 큰 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했다.
‘달의 요정 세일러문’ 등 색다르게 해석한 만화 주제곡, ‘바람이 분다’, ‘셀 블록 탱고(Cell block tango)’ 등 국내외의 알려진 노래를 편곡, 개사한 곡과 앙코르곡까지 모두 18곡을 소화했다. 여성 객원 단원 12명을 포함해 40명의 단원들은 2시간이 넘도록 관객들과 함께 호흡했다. 땀범벅이 되어 무대에서 내려오는 단원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공연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무대 뒤에서 다시 만난 만루는 “친구가 ‘잘 하더라’고 말해줘서 너무 좋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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