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이 일렁이던 날에 촛불 아닌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집회에 참여한 셈이지만 일이었지요. 최대 100만이 예상된다는 뉴스에 나름 마음의 준비를 했건만 그 규모는 생각 이상이었습니다. 서울광장에서 광화문광장까지 걸어가는데 1시간 반쯤 걸렸습니다. 양 어깨에 카메라를 걸고 노트북 가방을 메고 3단 사다리를 들고 인파 속에서 밀고 밀리며 다녔습니다.
저기쯤 담고 싶은 장면이 보여도 이동이 불가능할 땐 안달이 났습니다. 엄청난 인파에 통신이 두절되니 계획했던 시간대별 사진마감도 불가능했습니다. 광장을 벗어나야 겨우 통화와 사진전송이 가능했지만 그 이동 시간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기록적 인파 때문에 사진부에서만 4명이 투입됐는데 그 인파 때문에 일이 안 된다고 툴툴거렸습니다. 역사적 현장의 기록이라는 거룩한 사명도 지금 당장 이동의 불편함과 마감에 대한 강박 앞에 무력해져 버렸습니다.
늘 그러하듯 지나고 생각하니, 안달해봐야 그 순간에 해결될 것도 없지요. 좀 느긋하게 현장을 느끼고 즐기듯 취재했더라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을 테지요. 이건 뭐, 병이랄 수밖에 없습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에 따라 일어나는 욕심이 현장에 있지만 현장에서 저만치 물어나 버리게 하는 것이지요.
회사로 돌아와 장비들을 벗어놓자 조바심은 달아납니다. 카메라를 놓고 나서야 촛불의 시간을 복기할 수 있었습니다. 가을밤을 수놓은 100만 시민의 촛불은 뭉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내려오라” 외치는 사람들의 외침은 단호했습니다. 이심전심으로 나누는 참가자들의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분노해 모였지만 시민들의 표정들은 대체로 밝았습니다. 축제같은 집회가 분노를 표현하는 가장 진화된 방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광장에서 마음 졸이던 자는 저와 집회 참가자들의 청와대 앞 진출을 두려워한 '경찰 간부' 뿐이었겠지 싶었습니다. 사다리를 밟고 선 제 옆을 지나며 “경향신문 응원합니다”라는 격려를 건네는 분들이 기억나 훈훈해 졌습니다. 환자가 발생해 구급차가 들어오는데 인파가 홍해처럼 갈라지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8년 전 ‘광우병 촛불’때 MB는 청와대 뒷산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청와대에서 광장의 외침이 안 들릴 수 없고, 촛불의 물결이 안 보일 수 없지요. 박 대통령도 듣고 보았을 테지요. 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분노의 촛불을 볼만한 ‘장관’으로 받아들이고, 하야 촉구의 행진을 흥겨운 ‘축제’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울하고 씁쓸한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대통령과 그 주변에 상식과 상상을 초월하는 어이없는 일들이 다채롭게 펼쳐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자기합리화의 귀재 ‘아Q’의 ‘정신승리법’을 구사하고, '우주의 기운'에 기대 ‘유체이탈’을 도모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암울한 시대에 그나마 희망을 보는 것은 허무맹랑한 우주의 기운을 압도하는 또렷한 사람들의 기운이 광장을 가득 채우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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