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의 힘을 얘기합니다만 신문사진에서 그걸 확인시켜주는 일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며칠 전 검찰 조사받던 중에 찍힌 우병우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사진이 그 ‘한 장의 힘’을 보여줬습니다. 카메라에 포착된 우 전 수석의 여유 있는 모습은 선한 사람들의 입에서 ‘쌍욕’을 끌어냈습니다. 이 사진은 출두하며 질문하는 기자를 째려보던 사진 이미지와 연결되어 한층 더 화를 돋웠습니다.
창문 안은 그들만의 1% 세상인 듯 보였고 사진을 통해 이를 바라보게 된 창밖 99%는 모멸감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검찰 조사에서 팔짱을 낄 수도 실실 웃을 수도 없는 ‘개, 돼지’를 조롱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팔짱 낀 ‘황제’ 앞에 공손한 검찰이 어떤 수사를 할지 불 보듯 빤하지 않습니까.
이 ‘황제조사’ 사진은 조선일보 고운호 기자의 집중과 끈기로 이뤄낸 특종사진입니다. 타사에 물을 먹은 입장이지만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지요. 이 한 장의 사진은 신문과 방송, SNS 등에 도배되다시피 했습니다. 심지어 ‘오마이뉴스’가 조선일보 기자를 인터뷰하는 희귀한 일도 벌어졌습니다. 앞으로도 검찰 수사와 관련해 두고두고 인용될 사진이지요.
재밌는 건 소위 ‘특종사진’은 ‘창 너머로 찍힌다’는 공식을 또 한 번 확인했습니다.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서울신문 도준석, 2000) 사진, ‘병실 밖 내다보는 전두환 전 대통령’(중앙일보 김경빈, 1996)’ 사진도 오랜 뻗치기 중에 창문 안을 찍어 얻은 특종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잠옷 입고 TV보는 이완구 전 총리’ 모습, ‘병상에 누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사진 역시 긴 렌즈를 장착해 유리창을 통해 찍어 큰 반향을 일으켰지요.
하지만 ‘황제조사’ 사진이 기존의 ‘창 너머 특종’과 다른 것은 주요 인물을 보여 준 것에 머물지 않고 짐작은 하되 드러내기 어려운 ‘관계’를 증거처럼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권력이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관계 맺고 작동하고 있는 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줬지요. 검찰이 우 전 수석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에 ‘그럴 수 없겠구나’하는 강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저는 출근길에 페이스북에서 이 사진을 봤습니다. 보는 순간 “아~”하는 탄식이 나왔지요. 대부분의 사진기자들의 그러했을 테지요. 아마도 사진부 부장은 오전 부장단 회의에서 ‘우린 왜 이런 거 못 찍었나?’하는 따가운 시선을 받아내야 했을 겁니다. 대게 이런 경우 비슷한 시도로 만회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검찰은 이미 창문 단속에 들어갔을 테니까요.
어디 높은 곳에서 검찰청을 바라보면 유리창을 통해 조사 장면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사진기자면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생각이 곧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은 포착 확률이 미미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니 포착 확률은 그냥 ‘제로’인 셈이지요.
‘머리에서 발까지의 거리’가 참 멀다는 생각입니다. 그 거리를 자주 극복하는 것이 좋은 사진기자의 덕목이고 제겐 가장 큰 숙제인 것 같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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