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사진을 찍으러 남도로 향하는 걸음은 가벼웠지요. 전날 숙취로 내내 졸면서도 차창 밖으로 흐르는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풍광이 좋았습니다. 계획대로 되면 더없이 흐뭇한 출장이겠거니 했지요. 순천의 한 사찰에 가장 먼저 봄소식을 알린다는 홍매화를 담는 것이 첫 계획. 전남으로 들어서자 빗발이 굵어지고 바람이 강해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붉게 피었을 꽃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사찰엔 인적이 없었습니다. 홍매화도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붉게 흐드러졌어야 할 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나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내 수두룩한 나무엔 작은 꽃도 달리지 않았지요. 언제 꽃이 될까 싶은 꽃눈만 가지 위에 달렸습니다. 당황했습니다. ‘꽃이 폈다’는 걸 의심하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즉시 계획을 수정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