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지였던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외곽지역을 차량으로 오가며 현지인들의 모습을 살폈습니다. 몇 가지 관심을 갖고 본 모습 중에 하나는 ‘걷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걸어서 어디까지 가는 걸까?’ ‘얼마나 걸어왔으며 얼마나 더 걸어갈까?’ 궁금했습니다. 속도에 익숙한 제겐 눈앞에 펼쳐지는 느리고 막연한 걸음이 답답해 보였던 것이지요. 달구지나 오토바이를 타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냥’ 걸었습니다.
걷는 아프리카인들을 달리는 차 안에서 찍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에 좀처럼 속도를 늦추지 않는 차 안에서 걷는 이들을 찍는 것이 ‘비겁하고 소심한 사진 찍기’라 자아비판을 했습니다. 적어도 함께 걸으며 찍었어야 그 의미와 함께 사진의 무게감도 살아났을 테지요. 고로 아주 가벼운 사진들입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차량의 엔진소리에 길가로 비켜서며 차창 속의 일행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현지인의 시선과 마주치곤 했습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고 지고 들고 끌고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구불구불한 산길과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의 먼지 속에서도 걷고 또 걸었습니다. 목적지가 집이든 우물이든 시장이든 얼마만큼의 거리를 걸어가는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의 눈에 ‘걷는다’는 것 자체가 하루 일과의 또 삶의 중요한 부분인 듯 보였습니다.
‘걷기 예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걷기를 통해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고... 속도에서 벗어나고... 사색하는 것” 뭐 이런 좋은 말들을 길게 써놓은 책이지요. 읽다가 덮어 놓은 이 책이 떠오른 것은 이 프랑스인 작가가 예찬한 걷기는 고상한 취미 같은 생활적인 느낌이지만, 제가 목격한 아프리카인들의 걷기는 생존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생존적 걷기’에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이나 사색이 깃들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해봅니다.
지난달 다녀온 아프리카 출장 기획기사가 아직 지면에 선보이지 않은 상황에서 출장지의 이런저런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며 나름 자제하다가, '홍보가 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편 케냐 출신 마라토너의 귀화 뉴스를 접한 것이 자제력 상실의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지금도 마냥 걷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 세계적인 장거리 육상선수들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는 탄탄한 토양 아니겠습니까. 그나저나 케냐 마라토너가 귀화하면 태극마크를 달 수 있을까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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