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의 날'(5월11일)이라고, 양부모 학대에 숨진 정인이가 묻힌 경기 양평의 한 공원묘원으로 향했습니다. 묘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에야 달력에도 없는 '입양의 날'과 '평일 낮'이라는 애매한 시간에 정인이의 묘소를 떠올리는 발상이 지극히 '사진기자적'이라는 생각했지요.
묘원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군데군데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만이 햇볕을 받아 반짝였습니다. 정인이의 자리를 찾아 보도를 통해 익숙한 사진을 가만 들여다보다가, 묘역을 느릿느릿 한 바퀴 돌았다가, 축대 벽에 붙은 나태주 시인의 추모시를 읽다가, 방문객들이 놓고 간 선물을 훑어보다가, 몇 장의 사진을 찍다가, 반가운 인기척을 들었습니다.
6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쓰레기봉투를 든 채 익숙하게 묘소 주변 오래된 음식물과 시들어 뒹구는 국화를 담았고, 바람에 흩어진 선물을 정리했습니다. 잠시 후 일행인 듯 두 명의 여성이 합류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가방에서 ‘뽀로로’가 그려진 빵과 음료를 꺼내 정인이 사진 앞에 놓았습니다.
“늦게 와서 미안해” 이날 처음 왔다는 이가 정인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너무 이쁘다”
“얼마나 아팠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세 여성의 말들이 한숨처럼 묘소 주위를 감쌌습니다.
이들은 사진 속 맑디맑은 정인이를 따라 미소를 짓다가, 사진을 어루만지며 금세 울먹였습니다. 무엇이 이 짧은 순간에 마음을 흔드는 걸까, 무엇이 일면식 없는 아이를 먼 길 마다않고 “보고 싶다”며 달려오게 하는 걸까, 무엇이 이 ‘유별스러움’을 기꺼이 감당하게 하는 것일까. 셔터를 누르면서 알 듯 말 듯 궁금했습니다.
코로나 시대에 '연결'에 대한 갈증 정도로는 설명이 안 되겠지요. '공감'이라는 단어도 충분한 설명은 안 되겠지만, 어쨌든 이 추모객들은 16개월 아기 정인이가 말하지 못한 고통과 상처에 깊이 가 닿고 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누구나 한마디씩 보탤 수 있는 ‘슬프고 안타깝다’에 그치지 않고 ‘내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이곳을 찾는 이들의 공통된 마음이라 생각했습니다. 작은 행동이 '아동 학대'를 막는 일에 보탬이 되리라는 믿음도 작용했을 테지요. 추모객들이 두고 간 인형과 신발과 꽃과 간식이 깊은 애도의 마음과 어떤 다짐의 징표들이었지요.
흥건한 마음들이 공유되는 그곳에서 저는 조금 이질적인 존재가 된 듯했습니다. 그 느낌은 결핍감 같은 것이었지요. 카메라라는 도구가 사건과 저 사이를 매개하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깊이 들어가는 것'과 '물러서서 보는 것'의 중간 즈음에 길들여진 채로 사는 것 같습니다. 사진기자로 일면 합리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이도 저도 아니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인아 다시 올게.”
약속하며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습니다. 여운이 남았습니다, 라고 글을 마무리 짓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정인이 앞에 꽃 한 송이 놓지 못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