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서울공항에 내려 코로나 진단검사를 받았습니다. 면봉이 코 깊숙이 들어오자, 역시나 기침이 났습니다. 예상보다 덜 아팠지만 꾹 참으려다 터진 재채기에 면봉을 든 간호사에 민망하고 미안했습니다.
한미정상회담 하루 전 워싱턴에서도 진단 검사를 받았습니다. 백악관에서 나온 의료진이었습니다. 면봉이 콧구멍으로 들어올 때 반사적으로 긴장을 했지만 서너 차례 간질이다 말더군요. 설마 이게 다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스크를 내려 입을 벌리려는데 검사가 끝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 음성이라고 통보를 하더군요. 제대로 된 검사일까, 의심이 들면서도 같은 검사라면 왜 굳이 면봉을 깊이 쑤셔 넣어 고통스럽게 하는 걸까, 의문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서울공항을 떠난 버스는 집이 아니라 김포의 한 호텔로 향했습니다. ‘임시수용시설’이었습니다. 호텔 쪽문에 따로 낸 입구로 들어섰습니다.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 고생하는 의료진의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잠시 ‘누구나 잠재적 감염자이지만 그 중에서도 내가 감염자가 될 확률이 지금은 높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지퍼백에 든 간식 등 물품들을 창가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습니다. 맨 먼저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었습니다. 면발이 익는 동안 방을 둘러봤습니다. 침대와 TV, 소파, 테이블 등 기본적인 것들을 갖추고, 부수적인 것들은 다 치웠습니다. 가령 배달음식 목록, 호텔시설 이용안내 책자, 실내 슬리퍼, 메모지 같은 것들 말이지요. 숙박보다는 ‘분리’라는 목적에 충실한 것이겠지요. 창밖을 내다봤습니다. 물길이 있고 그 위에 주변 건물들의 빛들이 떨어져 일렁거렸습니다. 아라뱃길. 나름 ‘리버뷰’였습니다.
뉴스에 익숙해 있었지만, 막상 수용 당사자가 되니 기분이 꿀꿀해졌습니다. ‘입소’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분리와 고립에 대한 은근한 공포가 이는 것 같았습니다. 백신을 맞았으나, 행여 나를 포함한 누군가가 양성이 나온다면 모두 2주 격리라는 낯설고 지겨운 시간과 싸워야 할 테지요. 물 없이 고구마 몇 개를 먹은 듯 답답함이 가슴에 턱 걸렸습니다. 어쩌나 다음 주 근무와 그 다음 주의 휴가는….
침대 위에 앉아 쓴 입맛을 다시며 라면 한 젓가락을 후루룩 빨아올렸습니다.
‘아~~, 왜 이리 맛있는 걸까’
때마침 케이블 TV에서는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가 혼자 음식을 해먹으며 과한 감탄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컵라면 국물을 두어 모금 마셨습니다.
‘아~~, 이게 뭐라고 이렇게 시원할까’
희한하게도 조금 전 막막한 걱정은 사라지고, 날이 밝으면 모두 ‘퇴소’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피어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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