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그건 '니오타니' 예요"

나이스가이V 2018. 4. 12. 13:56

아내가 <사진강의 노트>(필립 퍼키스·박태희 옮김, 안목, 2014)라는 책을 내밀었습니다. 잘 알려진 책이고 사진이 제 밥벌이니 사진강의한 번 들어보라는 것이었지요.

 

필립 퍼키스는 사진가이며 대학에서 사진을 가르쳤습니다. 50년간의 강의를 바탕으로 집필한 책이라는군요. 공군에서 기관총 사수로 복무하며 사진을 찍었다는 이력이 재밌습니다. 사진 셔터와 기관총의 방아쇠는 여러 의미로 잘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필립 퍼키스

 

책에는 사진과 삶에 대한 그의 경험과 철학을 담았습니다. 밑줄을 그은 문장이 여럿이었습니다만제 현실과의 거리 또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만 적습니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에 대한 그의 당부입니다.

 

보여 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려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그의 바라봄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자연이란 비평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가 자연 속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빛, 공간, 질감, 그리고 공기의 울림과 관련이 있고, 자연이란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다는 놀라운 발견에 눈을 뜨게 되었다. 행운이란 순간적으로 바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의 그림자 같은 것이다. 빛이 반짝거리는 웅덩이에 둥둥 떠다니는 나뭇잎이 중요한 사건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사물들 간의 위계질서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그저 바라보기는 것이 그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진기자는 바라보는 것과 동시에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지요. 대체로 저에겐 그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간혹 그저 바라만 볼 때가 있기는 한 것 같습니다. 그의 바라봄과는 질적으로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응시는 의도와 계획이 아니라 대상이 그에게 다가오는 우연성에 기대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그의 사진작업은 보통 사진기자의 경험과는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입니다사진기자 앞의 마감시간은 우연을 기다려주지 않지요. ㅎㅎㅎ

 

퍼키스의 사진은 그의 '바라보기'와 어떤 '우연'이 앵글 속에 들어왔나 살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뉴욕, 1989

 

     리오 데 자네이로, 1995 

 

     멕시코시티, 1993  

 

         뉴욕, 1984

 

            코네티컷, 1968 

 

       뉴욕, 1994

 

그는 책에서 낚시꾼의 비유로 디지털 시대 사진의 느슨함을 지적하기도 했지요. 낚싯대를 드리울 때마다 최상의 고기를 낚는다면 더 이상 낚시꾼의 천국이 아니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할 순 없었습니다. 디지털 전에는 제한된 조건에서 치열한 고민을 했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만, 디지털 시대의 고민 역시 그의 시대 못지 않지요. 궁금해졌습니다. 퍼키스가 최신 디지털카메라를 쥐고 지금 거리에 선다면 어떤 것을 응시할까. 그가 나의 자리에서 밥벌이를 한다면 무엇을 바라보려 할까. 나와 얼마나 다를까.

 

필립 퍼키스는 "65세의 일선에서 은퇴한 노인(자신)의 내면에 여전히 '나중에 성장했을 때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관한 궁금증이 존재한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제자이며 하버드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존 리바인은 그런 퍼키스의 말을 듣고 "그건 니오타니(Neoteny)'예요"라고 답했습니다. 니오타니는 생물학적 성장이 끝났는데 의식 안에서는 호기심, 상상력, 장난치기,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의 욕구 같은 초기 성장 단계를 여전히 밟아 나가며, 어린 시절의 감성과 환상들을 그대로 간직한 어른을 은유적으로 지칭하는 생물학적 용어라고 설명합니다. 

 

'난 무엇으로 그리 될 수 있을까.' 그런 게 가능하다면 그게 사진이어도, 아니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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