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나 홀로 출사 '백사마을'

나이스가이V 2015. 5. 19. 14:48

서울 중계동 백사마을은 서울에서 알려진 출사지입니다. 104번지여서 백사마을이라고 불리는 달동네지요.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이 마을을 가끔 찾습니다. 6,70년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골목골목을 누비며 두어 시간 머물다 집으로 돌아오면 왠지 먼 여행을 다녀온 듯 나른한 기분에 젖기도 합니다.

 

10년 전 인근에 이사와 이 마을을 소재로 사진다큐를 지면에 싣기도 했습니다. ‘가난에 찌든 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라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매년 달동네의 사계절을 기록해 언젠가 사라질 마을에 대한 작업을 해보자 다짐을 했었습니다. 집이 가까운 것은 제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작업환경이었음에도 같은 이유로 자라난 게으름 때문에 시간만 흘러 보냈습니다. 저의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미련인지 취재용 카메라를 들고 퇴근해 쉬는 날 운동을 빙자해 나 홀로 출사를 감행합니다. 늘 느끼지만 미로와 같은 골목이 참 매력적입니다. 건축가 승효상씨를 빠져들게 한 골목입니다. 단순히 골목의 무계획적 구조 때문이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결들이 막힌 듯 이어지고 있는 골목길에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겁니다.

 

마을길에 인적은 훨씬 드물어졌습니다. 사람의 온기를 잃은 집은 금세 망가진다더니 무너져 내린 집들이 즐비합니다. 빈집이라 써 붙인 집들이 많아져 무겁게 내려앉은 마을이지만 여전히 주민들의 삶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달동네라는 단골 출사지와 그 안의 고단한 삶 사이의 거리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사진 찍기 좋은 곳은 촬영자의 삶과 거리가 멀수록 그 매력이 커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달동네에서 마주친 삶을 공감하고 이해하기보다는 대상화하거나 동정할 위험이 있지요. 비싼 카메라 들고 어슬렁거리며 나와 동떨어진 공간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다분히 폭력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타인의 남루한 삶의 공간이 그저 드문 사진, 좋은 사진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태도는 무엇인지, 왜 찍는지를 스스로 묻게 됩니다. 쉽게 답하지 못합니다.

 

40여 년 전 밀려들어온 삶들은 또 어디로 밀려가 고단한 삶을 부려 놓았을까. 10년에 걸쳐 수차례 같은 공간을 사진에 담는데 비어가는 공간이 더 많은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세월이 그만큼의 얘기를 보태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이젠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낯선 골목을 오가며 마을이 들려주는 얘기에 머리보다 카메라의 반응에 의지해 기록해 보았습니다.

 

거쳐 간 혹은 머물고 있는 숱한 삶의 흔적과 세월이 녹슨 철제 대문에, 허술한 집과 담벼락에, 타이어를 얹은 지붕에, 쌓인 연탄재에, 아무렇게나 타고 오른 담쟁이에, 거미줄 같은 골목에 깃들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남루한 집 앞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빨래를 보며 삶의 짙은 의지 또한 느껴졌습니다. 

 

낯익은 어느 대문 앞. 10년 전 그 대문 옆 지붕에서 저를 보고 마구 짖던 개를 찍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짖던 개도 없고 집도 비었습니다. 그 자리에 나이 10살 더 먹은 제가 낯설게 서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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