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면 먼저 떠올리는 것은 대게 꽃입니다. 사진기자들은 날씨가 풀리면 꽃을 찾으러 다닙니다. 신문사진의 계절 스케치는 실제 계절보다 조금 앞서가는 경향이 있기에 급한 기자들은 서울시내 화단 장식을 위해 하우스에서 재배되는 꽃을 찍어 서둘러 봄소식을 전하기도 합니다.
전남 광양의 매화, 구례의 산수유, 서울 여의도 윤중로(마이웨이^^)의 벚꽃, 응봉산 개나리, 그리고 목련과 진달래 등이 대체로 매년 지면에 등장하지요. 새로운 장소를 찾거나 빤한 장소에서 새로운 앵글을 구사하는 식으로 반복됩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지만 아마도 독자들보다 기자들이 이런 반복에 더 지겨울 겁니다.
‘청보리’는 좀 참신한 듯해도 매년 보는 꽃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소재입니다. 입사 후 처음으로 고창 청보리밭을 찾았습니다. 입사 16년째인데 아직 못 가본 곳이 널렸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쳐집니다. 다른 일로 출장 갔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렸지요. 평일이라 붐비지 않아 좋았습니다. 청보리밭이 푸르고 넓었습니다. 주말 인파 속에 있었다면 그 푸름과 넓음을 인지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봄꽃을 찍듯 앵글을 잡고 파인더로 보리밭을 보는데 청보리가 누웠다 일어났다 하더군요. 그제야 제 피부에 닿는 따스한 봄바람을 느꼈습니다. 온기 머금은 바람은 보리밭 위로 흐르며 푸른 파도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일렁이는 청보리에서 봄바람을 보았습니다. 바람을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은 봄바람이어야 했습니다.
셔터스피드 내려 저속으로 찍어 청보리의 흔들림을 찍습니다. 바람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청보리를 지워야합니다. 바람만 드러나면 보리의 형체는 없어지고, 보리를 잘 보여주려 하면 바람이 사라져 버리지요. 물론 사진기자라면 두 가지 다 찍습니다만 주로 바람에 꽂혔습니다. 부드러운 봄바람의 결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작자의 의도였습니다. ‘사진을 보면 바람 소리를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사진에서 바람소리가 들려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어설픈 사진 하나에 온갖 상상을 때려 넣습니다.
지면을 편집하는 J선배에게 “사진에 바람소리가 난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굳이 제목에 써 주셨네요.
센스쟁이. ^^
봄에는 봄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봄바람도 있다는 것을 청보리밭에서 새삼 깨달았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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