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사진기자들의 경쟁 중 상당부분이 자리경쟁입니다. 자리를 먼저 잡으려는 것은 안정적인 상태에서 적절한 사진을 얻을 확률이 높다는 경험에 의한 것이지요. 결국 자리경쟁은 좋은 사진을 찍으려는 경쟁입니다.
뉴스가 클수록 자리 경쟁은 치열해 집니다. 성완종 리스트 인물 중 한 명인 홍준표 경남지사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두고 수사팀이 있는 서울고등검찰청 앞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3단 사다리를 받치고 포토라인에 명함을 붙여 한 번 더 자리를 확인하는 치밀함도 보였습니다. 예닐곱 명의 사진기자들이 같은 생각으로 각 회사의 영역을 표시했습니다. 소모적인 자리 맡기 경쟁을 해소하자는 차원에서 ‘사다리만 있고 사람이 없으면 자리는 무효’라는 협회에 소속된 사진기자들의 약속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행여나 혹시나 싶어 자리를 맡아둡니다. ‘자리’ 그 자체보다 자리에 대한 강박에 ‘위안’을 얻기 위함일지도 모릅니다.
홍 지사 출석 당일 아침. 사람이 지키지 않은 전날 사다리의 효력은 없어졌고 먼저 검찰청에 도착한 기자의 순으로 자리선택의 우선권이 주어졌습니다. 현장추첨 보다는 소모적 여지가 있지만, 긴 시간 피곤을 감내한 투자에 대한 보상 측면에서는 합리적인 것 같았습니다. 그간 이런 상황에서 현장의 즉흥적 결정에 좌우되는 면이 많았습니다. 리스트 인물이 여럿 남았으니 수차례 이런 반복을 경험하다보면 가장 합리적인 매뉴얼이 만들어 지겠지요.
자리가 정리되자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회사별로 두세 명 이상이 나오다보니 평소 잘 만나지 못한 선후배 동료들을 한 번에 보게 됩니다. 반가운 인사, 초면의 선후배간의 통성명도 자연스레 이뤄지구요. 곳곳에서 웃음들이 터져 나옵니다. 검찰청이라는 무거운 공간에 떠다니는 가벼운 대화와 웃음이 의외로 조화롭다, 생각했습니다. 경험 많은 검찰 취재지만 내부에서 이는 잔잔한 긴장은 늘 있습니다. 기자들은 긴 시간의 긴장과 지루함을 그렇게 지우는 것 같습니다. 성완종 리스트의 인물들은 이 봄이 잠 못 드는 ‘잔인한 계절’이겠지만, 사진기자들에게는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친목의 계절’일 수도 있습니다.
오전 10시. 차량이 들어서고 긴장한 모습의 홍 지사가 내립니다. 기자들의 몇 가지 질문을 받고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까지 사진에 담습니다. 긴 기다림에 비해 허무하기 짝이 없는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에 집약된 긴장과 예민함은 정점을 찍습니다. 방금 전까지 평온하던 취재진 사이에서 고함이 터져 나옵니다. 누군가 암묵적 룰을 깨고 카메라의 시야를 가린 상황이지요. 생중계에 고함 소리가 낭자한 이유입니다. 가끔 민망하지만 이 역시 ‘현장성’이란 말로 합리화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자리경쟁’으로 시작한 글입니다.
성완종 리스트라는 것도 결국은 ‘자리’를 위한 눈 먼 탐욕의 결과물 아닌가요.
세상사, 인간사를 ‘자리경쟁’이라는 틀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홀로 출사 '백사마을' (1) | 2015.05.19 |
---|---|
슬픈 사자를 보았다 (0) | 2015.05.12 |
사진에 담은 봄바람 (0) | 2015.05.04 |
사진기자 배정현을 추모하며 (0) | 2015.04.30 |
드론이 들어왔다 (4) | 2015.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