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는 집 가까이에 백사마을이 있습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이사 와서 자주 다녔습니다. 끊어진 듯 연결되는 골목을 무작정 따라 걷는 게 좋았습니다. 골목이 주는 묘한 위안이 좋더군요. 미로 같은 골목을 뛰며 놀던 어릴 적 추억이 소환되곤 했습니다.
13년 전 ‘포토르포’라는 기획면에 사진과 글을 실었습니다. ‘달동네 골목골목 꿈이 익는다’는 제목으로 나간 기삽니다. 고단한 삶이 드러나는 곳이지만 골목마다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꿈을 읽으려했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습니다. “중계동 산104번지에는 여느 해바라기보다 고개를 더 길게 빼고 있는 해바라기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달’동네의 ‘해’바라기는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주민들이 심은 꿈이 아닐까.” 좀 오그라들지요?
최근 백사마을 재개발에 관한 기사가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가까이 살아서 눈에 더 잘 띄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마을에 빈집이 엄청 늘었다는 건 오가며 봐서 알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 놀던 구멍가게가 사라졌다는 것도 이미 알고 아쉬워했었지요. 문득 ‘구멍가게 앞 평상에서 딱지놀이 하던 아이들은 어디로 떠나갔을까?’ 궁금했습니다.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로 시작하는 다큐를 한 번 해보자 마음먹게 됐습니다.
13년 전 찍었던 구멍가게, 골목, 야경사진을 놓고 같은 자리에서 되도록 비슷한 앵글로 사진을 찍어보려 했습니다. 떠난 사람들, 사람이 떠난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3년 전과 현재를 나란히 보여주는 편집도 염두에 뒀었지요.
다큐를 하며 ‘가난’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말하는 것에 조심해야 겠다 생각했습니다. 사진과 글이 깊지 못하고 언저리를 배회하다 만 것 같은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변명 같지만)
‘가난해도 정답던…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라는 제목으로 2018년 백사마을이 지난 6일 포토다큐면에 게재됐습니다. 온라인으로 기사가 나가고 곧 댓글이 하나 붙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읽은 댓글인데 부끄러웠습니다.
“가난해도 정답다?
강윤중씨 당신이 가난을 알아?
실제 가난한 것이 얼마나 비통한지를...
바보네.”
기사 내에 “가난해도 정답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제목으로 뽑은 표현이 거슬렸던 모양입니다. 가난을 경험하지 않았던 이들이 흔히 쓰는 상투적 표현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섬세하지 못했습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쓴다는 것은 늘 부담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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