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신안군 안좌도 오동리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왜 하필 그곳에 갔을까, 궁금해 하는 분들이 주변에 서너 명 있더군요. ^^ 오동리 마을은 사진기자 ㅂ선배가 나고 자란 고향입니다. 그 선배의 소개로 마을 이장님과 통화하고 다큐길에 오르게 된 것이지요.
수년 전 다큐하러 어느 농촌을 찾았다가 사기꾼으로 의심을 산 적이 있습니다. 이거다 싶은 사진을 못찍어 다양하게라도 찍으려다보니 긴 시간이 필요했지요. 종일 옆에서 이것저것 묻고 사진 찍고 하다보니 ‘이 사람 뭐지?’ 했던 것이지요. 기자라고 다시 신분증을 내밀어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사람을 보증으로 내세웠던 것이지요.
안좌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선배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좀 누추해도 우리집 가서 자면 된다. 울 엄니께는 얘기했어. 엄니가 요즘 공공근로 나가셔서 아침 드시는 시간이 좀 빠르기도 하고... 그래도 손님인데 반찬도 없다고 하시길래, 그냥 아들이라고 생각하시고 식사하실 때 수저랑 밥 한 그릇만 더 놓고 드시라고 했으니... 찬 없고 그래도 이해하시길”
ㅂ선배의 엄니, 김순례 어머님과 밥상을 놓고 마주 앉았습니다.
“내 집이다 생각허고, 어려워 말고.”
나름 서먹한 가운데 예의를 갖추려하자 즉시 말씀하셨지요.
“찬 없어도 맛나게 묵어”라고 하셨지만, 평소 집에서 먹던 반찬보다 많았습니다. 어머님은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이것저것 차리셨던 겁니다. 어머님은 밥을 먹는 동안에 문득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던졌습니다.
“둘이 묵으이 맛나네.”
5남매 키워 모두 뭍으로 내보내고, 대부분의 끼니를 혼자 차려서 드셨을 테지요. 문득 던진 그 말을 곱씹다가 먹먹해졌습니다. 평소 김치와 나물 두어 가지쯤 놓고 드셨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낫을 챙겨 공공근로를 나서면서도 제게 점심 꼭 챙겨먹으라 당부하고 또 당부하셨지요.
목포로 나오는 배에서 어머님의 밥상을 생각했습니다. 매일 아침상에 계란찜이 올라왔습니다. 일찍 일터로 나가는 바쁜 아침에 계란찜은 확실히 저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삼겹살과 동그랑땡도 번갈아 밥상을 차지했지요. 선배가 좋아하던 찬이었겠다 싶었습니다.
마을 회관에서 만난 어르신이 말씀하셨지요. “맛있게 묵어야제. 그래야 (밥상 차린 사람이) 안 미안허제”
맛있게 잘 먹어보여 드렸어야 했는데 깨작거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석에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은 자식, 손주들과 함께 밥상에 둘러앉으셨겠지요. 그 넉넉한 미소와 털털한 웃음이 그려집니다. 연휴 끝나고 다시 밥상 앞에 홀로 앉으실 때 참 허전하고 적적하시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섬을 떠나기 두어 시간 전 기사를 마감하고 있는데 일 나가신 어머님이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찬 없으니 계란후라이라도 해묵어~”
어머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건강하세요.
“둘이 묵으이 맛나네.”
이 세상의 못난 자식들을 민망하게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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