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입사시험 면접에서 면접관이 물었습니다.
“로버트 카파가 누굽니까?”
짧은 질문에 짧게 “전쟁터를 누비던 종군 사진기자입니다”라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지요. 다행히 면접관은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면접관은 회사 선배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카파의 명언 “If your photograph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다)”를 그 대답 뒤에 갖다 붙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답이었을 것을. ^^
전쟁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 멋진 말을 사진기자 초년병때 처음 접한 뒤 고개를 끄덕댔을 때는 '다가간다'의 의미를 피사체와의 ‘물리적 거리’로 받아 들였습니다. 평소 멀찍이 떨어져 피사체를 당겨 찍는 망원렌즈를 선호했던 것, 가까이 붙었을 때 몸싸움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반성해야했지요. 광각렌즈를 끼고 현장에 몸을 던지는 투지를 보이리라. 바짝 붙어서 힘 있고 극적인 사진을 얻어내리라. 그렇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세월이 조금 지나 이 말을 다시 접하면서 ‘다가감’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대상을 향해 카메라를 가까이서 들이대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입니다. 오히려 그의 말은 ‘대상에 대한 애정과 교감’을 강조했다는 생각입니다. 뭐 양쪽을 다 아우르는 표현이기는 합니다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기자들은 후자 쪽에 무게를 실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하튼 가끔씩 좋은 사진에 대한 강박과 조급증의 노예가 되기도 하는 제게는 죽비와도 같은 말입니다.
로버트 카파의 사진전이 지금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사진전인데 아직 저도 못 봤습니다. 그의 “충분히 다가가라”는 말을 붙들고 그의 사진을 하나하나 새겨 볼 생각입니다. 10월28일까지 열린답니다.
로버트 카파는 1954년 전장에서 카메라를 쥔 채 지뢰를 밟아 사망했습니다. 그가 기록하려했던 사진처럼 산화한 것이지요. 그의 나이 41세. 그는 사진같은 죽음으로 전설이 되었습니다. 올해 제 나이 마흔 하나. 난 어떤 모습의 사진기자인지? ㅎㅎ 좀 우울해 지려 합니다. ^^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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