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만난 타 부서 선배들이 제게 다가와 묻습니다. “다친데 없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린가 했더니, 주말 소위 ‘태극기 집회’라 불리는 ‘친박 단체’ 집회에서 제가 겪은 작은 해프닝을 전해 들었던 모양입니다. 제 옆자리 ‘이야기꾼’ S선배의 입을 거쳐 나간 것이라 짐작합니다. 두어 다리 건너간 얘기는 극적이고 긴박해지고 포장되고 과장되기도 하는 것이지요.
지난달 25일 촛불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장비를 챙겨 회사를 나섰습니다. 가는 길에 “3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하는 친박 단체 집회를 잠깐 찍고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태극기를 든 어르신들이 하나둘 스쳐갔습니다. 집회가 한창인 서울광장 일대는 붐볐습니다.
광화문광장 쪽으로 향하며 적당한 위치를 찾아 섰습니다. 무대에서는 제법 거리가 있었습니다. 카메라를 드는 순간 60대 전후쯤 보이는 아주머니가 “뭐 찍어요?”하고 묻습니다. 뭐 딱히 궁금해 묻는 것은 아니었지요. “집회 사진이요” “왜 찍으세요?” “취재하는 겁니다. 경향신문 기잡니다.” 두세 명의 비슷한 연배의 아주머니들이 제 주위에 둘러섭니다. 잘 걸렸다는 듯이 말이지요.
살짝 위기감을 느낀 저는 아버지를 팔았습니다. “아버지도 만나겸 해서...” 상황 모면용 내지는 짐짓 여유를 부리는 말처럼 뱉은 겁니다. 사실 지난주 아버지께서 친구분들과 처음으로 이 집회에 참가하셨다는 것을 둘러서 듣게 되었지요. 여하튼 이날 또 나오셨다면 우연히라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있었던 터라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습니다.
“이봐, 여기 가방에 노란리본 달았네.” 몸에 태극기를 지니지 않아 의심했던 저를 이제 확신에 차 몰아붙입니다. “노란리본 단 사람이 여기서 무슨 사진을 찍어?” “(앞쪽 빈 공간을 가리키며) 여기 빈 데 찍어서 몇 명 안 왔다고 쓰겠지.” 앵글지도까지 하십니다. 회사를 나서며 노트북 가방에 달린 노란리본 뱃지를 뗄까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건 좀 비겁해 보였지요. 설마 했는데 그 뱃지 때문에 취재는 불가능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떼는 것도 우스운 일 아니겠습니까. 소란에 시선들이 꽂혀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노란리본 달면 안 됩니까?”라는 말을 소극적으로 던진 채 자리를 벗어나려다, ‘도망치듯 사라지면 내 모습이 얼마나 우스울까’ 싶어, 태연한 척 그 자리에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 몇 컷 찍으며 천천히 걸어서 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자식을 키우고 손주 재롱을 볼 분들이 어떻게 노란리본을 적대할 수 있나?’ 또 큰 위협은 아니었지만, ‘만약 아버지가 거친 공격을 당하는 나를 보셨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따라붙었습니다. 물론 그날 아버지께서 그곳에 계셨는지는 지금도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 사진가는 “뭘 찍냐?”는 물음에 “태극기를 전문으로 찍는 사람”이라 답 해 따뜻한 격려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빤한 집회현장에서 기자에게 ‘뭘 찍냐?’ '왜 찍냐?'고 따져 묻고 취재를 방해하는 비정상의 겨울을 나고 있습니다.
그 수모를 견디며 취재하는 모든 동료 기자들에 박수를 보냅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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