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여느 때보다 길게 느껴지는 겨울이지 않습니까. 이른 꽃소식이 지면에 몇 차례 소개됐지만 개의치 않고 남도로 향했습니다. 만개한 꽃보다 꽃이 피기 전의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왠지 이 시국에 정의로운 국민의 바람이 개화를 앞둔 꽃눈과 다르지 않다는 식의 억지 최면을 걸었습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내린 지난 22일 전남 완도군에 있는 완도수목원을 찾아갔습니다. 빗속엔 제법 따스한 기운이 스며있었지요. 카메라에 접사렌즈를 끼웠습니다. 사실 여의도 벚꽃, 구례 산수유, 광양 매화 등 규모 있는 꽃 축제 사진은 수차례 찍어보았습니다만, 그때도 접사렌즈를 장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접사렌즈를 이용해 꽃사진을 찍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지 않았었지요. 그런류의 사진은 따로 취미를 둔 사람들의 영역이라 생각했습니다.
명색이 사진기잔데 꽃눈을 클로즈업해 찍는 것이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노트북에 띄우고 크게 보니 여러 가지 새로운 것이 보입니다. 꽃눈은 정교한 무늬와 색을 품고 있었습니다. 노랑, 하양, 빨강의 꽃으로 피어날 색이 그 속에 있었지요. 향기 또한 품고 있지 않겠습니까. 문득 ‘그렇다면 소리는 어떠할까’ ‘꽃이 막 터져 나오는 바로 그 순간의 소리는 무엇일까’가 궁금했습니다. 귀가 밝고 선한 사람은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삼지닥나무
개나리
대만남천
마취목
생강나무
동백
진달래
개비자나무
비목나무
목련
매화
상투적이지만 꽃에서 읽히는 인생도 있지요. 깊이 들여다보는 자는 자신의 삶을 투영하게 마련이지요. 수목원에서 보니 한 공간에 있으면서도 일찌감치 꽃을 피우는 나무도 있고 꽃눈조차 키워내지 못한 상태의 나무도 있었지요. 서둘러 핀 동백은 만개한 상태로 허무하게 떨어져 내렸습니다. 만개와 낙화. 절정이자 추락. 뭔가 우리 삶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하다 느꼈습니다.
겨울의 수목원에서 꽃보다 꽃을 피우기 위해 추위를 견딘 뿌리와 줄기에 찬사를 보내야 되지 않겠나 하고 깨닫습니다. ‘나는 삶에서 어떤 꽃을 피울 뿌리를 갖고 있을까, 화려한 꽃이 목적이어야 할까’하는 간지러운 질문을 던져 봅니다.
떨어진 동백
생각이 가지처럼 뻗다 결국 국정농단에 가 닿습니다. ‘꽃의 허무함보다 더한 것이 권력 아닐까.’ 비약이지만, 대통령이 꽃을 곁에 두고 유심히, 또 깊이 들여다보기라도 했다면 나라가 이 지경까지 됐겠는가. 최순실이, 이재용이, 김기춘이, 조윤선이 허무하게 지고 마는 꽃의 절정을 알았다면 지금의 모습은 아니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이른 봄에 설레다보니 오버하게 되는군요. ^^
송두리째 빼앗긴 것 같은 긴 겨울입니다. 남도에서부터 봄은 오고 있습니다.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