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온다~"
주변의 작은 분위기 변화에 무리속에 누군가가 외치고 삼삼오오 얘기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기자들은
부산을 떨며 카메라를 급히 들고 자세를 잡습니다. 5초도 안되는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지요.
흡사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처럼 신속합니다.
금세 "에이~뭐야"하는 소리들이 이어서 흘러나옵니다.
보통 이런 상황들이 세 차례쯤 지나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요.
바로 압수수색 현장입니다.
취재를 위해 무작정 기다린다는 은어 '뻗치기'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현장이지요.
어제 검찰이 SK그룹 본사를 압수수색 했습니다.
오전 9시경부터 오후 7시까지 약 10시간을 사다리에 앉아 기다렸던 선배와 교대를 했습니다.
압수수색한 수사관들이 그때까지 나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10시간을 뻗쳤던 선배는 초췌해 있었지요.
사다리를 받쳐 놓은 곳은 그룹 본사의 로비.
로비 밖 주차장에 검찰 수사관들이 타고온 버스가 주차돼 있었지요.
기자들은 압수물을 든 수사관들이 줄지어 나와 주차된 버스로 가는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종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시간동안 뭐하냐구요?
책보는 사람도 있구요. 게임하는 이도 있구요. 하지만 대체로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무슨 말이든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기회가 많지 않은 관계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평소 서먹했던 동료기자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같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은 누군가를 알게되기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더군요. ^^
시간이 지체되면서 기자들은 이런지런 추측을 보탭니다.
"이미 지하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아니 검찰버스가 주차장에 있는데..."
"기자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전술이다"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주차장의 버스가 움직였지요.
'후다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갑니다.
플래시가 터지고...
버스속 검찰관계자들은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고,
그렇게 버스는 떠나갔습니다.
기자들은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뭐야? 박스가 없잖아"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그제서야 뭐가 잘못돼 가고 있다 느꼈는지,
로비 주변을 찍기 시작합니다.
원하는 그림이 안나오면 아쉽지만 다른 그림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일종의 면피 행위지요.
기자들이 기다리던 것은 수사관들이 파란색의 검찰 로고가 새겨진 박스를 든 채 줄지어 나오는 그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다른 기업의 압수수색때 찍은 사진입니다 ^^
바로 이런 상자를 밀고 지고 이고 나오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넣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아침에 들어갔다는 20여명의 수사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하로 다 빠져 나갔구나', 판단했습니다.
검찰버스 두 대가 빈 채로, 허무하게 빠져 나간뒤, 주차장에는 검찰 승용차 한 대.
기자들도 하나둘씩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장애인 주차장에 세워진 검찰 소속 승용차에 시선을 꽂은 채, 갈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몇몇 기자들이 모여 앉아 "가자" "기다리자" 의견이 분분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을 찍어서 조지자"고 했지요.
그때 등장한 수사관.
로비에서 방송기자들이 따라붙었고 밖에 갈까말까 망설였던 기자들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회전문으로 나오던 수사관은 기자들과 얽혀 문 안에 잠시 갇혔었지요.
묵직한 박스를 기다렸건만, 수사관의 손에는 달랑 서류봉투 한 개씩.
기자들을 뒤로 하고 검찰 승용차도 유유히 빠져 나갔습니다.
약 12시간의 뻗치기의 결과치고는 참 허무했지요.
"SK 정도면 이미 검찰과 말이 됐을 것이다"
"저 서류봉투 안에 모든 것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자료은 폰으로 담아 전송했을 것이다"
아쉬움을 그런식으로 위로합니다.
길고 길었던 뻗치기의 하루는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ㅜㅜ
yoonjoong
주변의 작은 분위기 변화에 무리속에 누군가가 외치고 삼삼오오 얘기나누며 시간을 죽이고 있던 기자들은
부산을 떨며 카메라를 급히 들고 자세를 잡습니다. 5초도 안되는 시간에 이뤄지는 것이지요.
흡사 "늑대가 나타났다"는 양치기 소년의 외침에 동네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처럼 신속합니다.
금세 "에이~뭐야"하는 소리들이 이어서 흘러나옵니다.
보통 이런 상황들이 세 차례쯤 지나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요.
바로 압수수색 현장입니다.
취재를 위해 무작정 기다린다는 은어 '뻗치기'의 정수를 만끽할 수 있는 현장이지요.
어제 검찰이 SK그룹 본사를 압수수색 했습니다.
오전 9시경부터 오후 7시까지 약 10시간을 사다리에 앉아 기다렸던 선배와 교대를 했습니다.
압수수색한 수사관들이 그때까지 나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10시간을 뻗쳤던 선배는 초췌해 있었지요.
사다리를 받쳐 놓은 곳은 그룹 본사의 로비.
로비 밖 주차장에 검찰 수사관들이 타고온 버스가 주차돼 있었지요.
기자들은 압수물을 든 수사관들이 줄지어 나와 주차된 버스로 가는 과정을 취재하기 위해
종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 시간동안 뭐하냐구요?
책보는 사람도 있구요. 게임하는 이도 있구요. 하지만 대체로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눕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무슨 말이든 하지않으면 안됩니다.
이런 기회가 많지 않은 관계로 얘기를 나누다보면 평소 서먹했던 동료기자들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거든요. 같은 공간에서의 몇 시간은 누군가를 알게되기 충분하고도 넘치는 시간이더군요. ^^
시간이 지체되면서 기자들은 이런지런 추측을 보탭니다.
"이미 지하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아니 검찰버스가 주차장에 있는데..."
"기자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전술이다"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던 중 주차장의 버스가 움직였지요.
'후다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반사적으로 튀어나갑니다.
플래시가 터지고...
버스속 검찰관계자들은 자기들은 아니라고 하고,
그렇게 버스는 떠나갔습니다.
기자들은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뭐야? 박스가 없잖아"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그제서야 뭐가 잘못돼 가고 있다 느꼈는지,
로비 주변을 찍기 시작합니다.
원하는 그림이 안나오면 아쉽지만 다른 그림이라도 찍어야 한다는, 일종의 면피 행위지요.
기자들이 기다리던 것은 수사관들이 파란색의 검찰 로고가 새겨진 박스를 든 채 줄지어 나오는 그림이었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다른 기업의 압수수색때 찍은 사진입니다 ^^
바로 이런 상자를 밀고 지고 이고 나오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려넣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자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아침에 들어갔다는 20여명의 수사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하로 다 빠져 나갔구나', 판단했습니다.
검찰버스 두 대가 빈 채로, 허무하게 빠져 나간뒤, 주차장에는 검찰 승용차 한 대.
기자들도 하나둘씩 회사로 돌아갔습니다.
장애인 주차장에 세워진 검찰 소속 승용차에 시선을 꽂은 채, 갈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몇몇 기자들이 모여 앉아 "가자" "기다리자" 의견이 분분했고,
누군가는 "장애인 전용 주차장에 차를 세운 것을 찍어서 조지자"고 했지요.
그때 등장한 수사관.
로비에서 방송기자들이 따라붙었고 밖에 갈까말까 망설였던 기자들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회전문으로 나오던 수사관은 기자들과 얽혀 문 안에 잠시 갇혔었지요.
묵직한 박스를 기다렸건만, 수사관의 손에는 달랑 서류봉투 한 개씩.
기자들을 뒤로 하고 검찰 승용차도 유유히 빠져 나갔습니다.
약 12시간의 뻗치기의 결과치고는 참 허무했지요.
"SK 정도면 이미 검찰과 말이 됐을 것이다"
"저 서류봉투 안에 모든 것이 들었을 지도 모른다"
"자료은 폰으로 담아 전송했을 것이다"
아쉬움을 그런식으로 위로합니다.
길고 길었던 뻗치기의 하루는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ㅜㅜ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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