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물막이 방조제 공사가 끝난 지 1년. 전북 부안군 계화도 갯벌은 작년 물막이 완공 직후 찾았을 때보다 훨씬 더 황폐해진 모습이었다. 바닷물의 유입이 없는 갯벌은 말라붙어 흙먼지를 날렸다. 갯벌에 내딛는 순간 단단한 느낌이 발끝에 와 닿는다.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 놓았던 굴곡도 없어져 그저 평평하고 황량한 벌판 같다. 풀씨를 뿌리는 작업에 동원된 트랙터의 거친 바퀴자국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 새만금 물막이 이후 말라버린 부안군 계화도 갯벌이 거대한 밭처럼 변했다. 황량한 갯벌 뒤로 물을 가로 막고 있는 방조제와 배수갑문이 보인다. |
지난해처럼 이른 아침의 정적을 가르며 줄지어 갯벌로 향하던 경운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여 걸어갔을까. 물길이 있는 곳에 단 두 명의 어민이 그레(조개잡이 도구)질을 하고 있었다. 생합이 잘 잡히지 않는지 그레질보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게 일처럼 보였다. 그레질 하던 홍소자 할머니(63)는 “생합이 없어요. 잡히는 건 다 잔 생합이라요. 이거라도 안 잡으면 묵고 살기 힘들어요”하고는 멍하니 갯벌을 바라봤다. 그레질 하는 어민들 머리위로 군무를 펼치던 도요새도 먹이가 사라진 갯벌에 셀 수 있을 정도만 남아 있었다.
| 토사에 묻힌 배가 가쁜 숨을 쉬듯 겨우 뱃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물이 들던 곳이라는 짐작을 하게 할 뿐이다 |
맨손어업에 생계를 기댄 어민들의 오랜 걱정은 현실이 됐다. 그레질로 4남매를 키운 이순덕씨(59)는 “바다가 통장이었는디 나가믄 벌었으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 들어 열흘 일했다며 생합을 내다판 전표 10장을 내민 이씨가 지난 넉 달 동안 손에 쥔 건 60여 만원이 전부다. 계화도 ‘이모’라 불릴 정도로 사람 좋은 이씨도 삶의 근간인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병이 났다. 방바닥에 약봉지가 눈에 띄었다. “어떻게 살으까 모르겄어. 아이구...큰일났어...아이구...” 연방 내쉬는 긴 한숨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 어민들이 염분과 흙먼지 등의 날림을 막기 위한 풀씨를 심는 작업에 동원됐다. |
어선어업을 하는 양지포구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물을 막기 전 소라, 우렁, 꽃게, 도다리, 대하 등 다양했던 수산물은 이제 없다. 바닥을 긁어 생합이나 농어 정도를 건져낼 뿐이다. 그마저도 어획량이 급감해 하릴없이 배를 놀리기 일쑤다. 선주인 김하수씨(40)는 “1년 만에 이렇게 망가졌다. 인심도 삭막해 지는 것 같다”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죽어가는 거 쳐다만 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해수유통으로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 언제 죽었는지 모를 조개들이 폐그물에 걸린 채 어지럽게 널려 무덤을 이루고 있다. |
요즘 계화도 갯벌에는 어민들이 동원돼 풀씨를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마른 갯벌의 염분과 흙먼지의 날림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공공근로사업이다. 거대한 밭처럼 변해버린 갯벌에 농기구를 들고 선 어민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 그레로 바닥 여기저기를 긁던 한 어민이 생합이 잘 나오지 않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
새만금 물막이 1년. 계화도 어민들의 가슴은 죽은 갯벌처럼 시커멓게 탔고, 쉴 새 없는 한숨은 더 말라붙은 갯벌만큼이나 더 깊고 길게 느껴졌다.
〈사진·글 강윤중기자 yaja@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