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다큐

새만금 물막이 1년

나이스가이V 2007. 4. 24. 01:28
[포토다큐] 물막이 1년, 다시 찾은 부안 계화도
입력: 2007년 04월 22일 17:25:35
 
새만금 물막이 방조제 공사가 끝난 지 1년. 전북 부안군 계화도 갯벌은 작년 물막이 완공 직후 찾았을 때보다 훨씬 더 황폐해진 모습이었다. 바닷물의 유입이 없는 갯벌은 말라붙어 흙먼지를 날렸다. 갯벌에 내딛는 순간 단단한 느낌이 발끝에 와 닿는다.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 놓았던 굴곡도 없어져 그저 평평하고 황량한 벌판 같다. 풀씨를 뿌리는 작업에 동원된 트랙터의 거친 바퀴자국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새만금 물막이 이후 말라버린 부안군 계화도 갯벌이 거대한 밭처럼 변했다. 황량한 갯벌 뒤로 물을 가로 막고 있는 방조제와 배수갑문이 보인다.

지난해처럼 이른 아침의 정적을 가르며 줄지어 갯벌로 향하던 경운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 시간여 걸어갔을까. 물길이 있는 곳에 단 두 명의 어민이 그레(조개잡이 도구)질을 하고 있었다. 생합이 잘 잡히지 않는지 그레질보다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게 일처럼 보였다. 그레질 하던 홍소자 할머니(63)는 “생합이 없어요. 잡히는 건 다 잔 생합이라요. 이거라도 안 잡으면 묵고 살기 힘들어요”하고는 멍하니 갯벌을 바라봤다. 그레질 하는 어민들 머리위로 군무를 펼치던 도요새도 먹이가 사라진 갯벌에 셀 수 있을 정도만 남아 있었다.
토사에 묻힌 배가 가쁜 숨을 쉬듯 겨우 뱃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물이 들던 곳이라는 짐작을 하게 할 뿐이다

맨손어업에 생계를 기댄 어민들의 오랜 걱정은 현실이 됐다. 그레질로 4남매를 키운 이순덕씨(59)는 “바다가 통장이었는디 나가믄 벌었으니...”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올해 들어 열흘 일했다며 생합을 내다판 전표 10장을 내민 이씨가 지난 넉 달 동안 손에 쥔 건 60여 만원이 전부다. 계화도 ‘이모’라 불릴 정도로 사람 좋은 이씨도 삶의 근간인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자 병이 났다. 방바닥에 약봉지가 눈에 띄었다. “어떻게 살으까 모르겄어. 아이구...큰일났어...아이구...” 연방 내쉬는 긴 한숨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어민들이 염분과 흙먼지 등의 날림을 막기 위한 풀씨를 심는 작업에 동원됐다.


어선어업을 하는 양지포구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물을 막기 전 소라, 우렁, 꽃게, 도다리, 대하 등 다양했던 수산물은 이제 없다. 바닥을 긁어 생합이나 농어 정도를 건져낼 뿐이다. 그마저도 어획량이 급감해 하릴없이 배를 놀리기 일쑤다. 선주인 김하수씨(40)는 “1년 만에 이렇게 망가졌다. 인심도 삭막해 지는 것 같다”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죽어가는 거 쳐다만 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면서 “해수유통으로 다시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언제 죽었는지 모를 조개들이 폐그물에 걸린 채 어지럽게 널려 무덤을 이루고 있다.

요즘 계화도 갯벌에는 어민들이 동원돼 풀씨를 뿌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마른 갯벌의 염분과 흙먼지의 날림을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공공근로사업이다. 거대한 밭처럼 변해버린 갯벌에 농기구를 들고 선 어민들의 모습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그레로 바닥 여기저기를 긁던 한 어민이 생합이 잘 나오지 않자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새만금 물막이 1년. 계화도 어민들의 가슴은 죽은 갯벌처럼 시커멓게 탔고, 쉴 새 없는 한숨은 더 말라붙은 갯벌만큼이나 더 깊고 길게 느껴졌다.

〈사진·글 강윤중기자 yaj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