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쌍팔년도 사진'

나이스가이V 2016. 8. 2. 16:33

어떤 류의 사진은 사진을 찍기 전에 이미 익숙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대게 이런 이미지를 피하고 싶은 게 평균적 사진기자의 마음입니다. ‘주식거래 30분 연장사진도 그랬습니다. 벽시계를 걸고 객장을 찍는다는 게 경험 있는 사진기자들이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입니다.

 

한 증권사 객장을 찾았습니다. 저와 타사의 몇몇 후배들이 거래 마감시간 즈음해서 모였습니다. 한 후배의 손에 벽시계가 들려있었습니다. 이미 지면으로 증명되어 온 '굳은 이미지'는 떨치기 힘든 것이지요. 정성이 대단하다고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시황 모니터 상단에 숫자로 시간이 표시돼 있어 벽시계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무엇보다 '빤한 이미지'를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후배는 준비한 시계를 카메라 앵글 속에 넣어 연방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림이 되냐?”며 슬쩍 눈길을 주자, “한 번 찍으시라는 눈짓을 해옵니다. ‘그래, 식상한 앵글이지만 한 컷만 찍자.’ 그렇게 타협하고 말았습니다.

 

 

 

지면에 쓰지는 말았으면...’하며 딱 한 장 전송했고, 시황 모니터를 찍은 사진을 여러 장 마감했습니다. 비슷한 사진을 여럿 보낸다는 것은 요걸 썼으면 하는 작자의 바람이 담긴 것이지요. 편집자는 한 장 보낸 벽시계 사진을 신문에 썼습니다. 최초의 독자라는 편집자의 선택은 저의 복잡한 심사와는 달리 명쾌하고 간단했지요. 마찬가지로 익숙해서였을까요. 혼란스럽습니다. 망설이다 구색맞춤용으로 보낸 바로 그 사진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애초에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고 늦은 후회를 합니다만, 안타깝게도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과정과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시계가 주는 ‘30분 연장이라는 명쾌한 설명적 사진을 다른 이미지들이 뛰어넘지 못한 것이지요.

 

빤한 사진흔히 쌍팔년도 앵글이라 불리는 사진을 찍습니다. 빨간 신호등이나 먹구름 아래 위기의 대상(검찰, 롯데, 조선소, 국회 등)’을 넣어 찍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지요. 쌍팔년도에는 나름 신선하지 않았겠습니까. ^^ 

 

유사하게 반복되는 현장에서 가끔 새로운 사진을 찍어낼 수 있다면 그런 약발로 사진기자의 직업적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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