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미용실'

장돌뱅이처럼 5일장 돌았습니다.

뭘 팔았냐고요? ‘발품’입니다. ^^

 

 

전날 함평장에 이어 전남 신안군의 지도장을 찾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머리에 보자기를 두른 할머니들이 적잖이 눈에 띄었습니다. 한 할머니를 뒤따라 들어선 ‘에덴미용실’은 읍내에 있는 여러 미용실 중 한 곳입니다. 파마약과 염색약이 스며들 시간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수건을 머리에 감고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추석 앞두고 5일장 사진 찍으러 온 경향신문 기잡니다.” 어르신들이 반겨주셨고 미용실 원장님도 “우리 엄마들 잘 찍어주세요”라고 취재를 허락했습니다. 명절 앞이라 새벽 6시부터 손님이 몰려들었지요. 

 

 

 

아마도 ‘늙고 아프다’는 얘기 중에 나온 말인 것 같습니다. 한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젊어 보이려고 (머리)하는 게 아니여. 안 추해 보일려는 것이제.” ‘젊어 보이기’와 ‘안 추해 보이기’사이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습니다. '늙는다는 것'에 대한 할머니의 통찰이 녹아있는 지혜로운 말이라 생각했습니다. 연휴에 찾아올 자식 손주들 앞에 ‘안 추해 보이기 위해'라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대목에 바쁜 원장님의 어머니가 또래의 손님들을 위해 ‘우묵(우뭇가사리로 만든 묵)’과 갓김치를 내왔습니다. “맛있네. 맛있어”를 연발합니다. 미용실 문이 수시로 열리며 손님들이 들어섭니다. 마주치는 표정과 인사로 어떤 관계인지, 또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 얼마나 오랜만에 만났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농사일에 멀리 않은 곳에 살아도 얼굴 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추석 앞두고 미용실은 뜻밖의 만남까지 있는 설레는 공간이었지요.

 

 

“어쩌면 살이 찌까? 먹는 것은 잘 먹어도 살이 안 쪄”

“일들을 많이 헌께” 둘러보니 살이 찐 건 저 혼자였습니다. 뜨끔했지요.

인근 선착장에서 임자도로 가는 2시 배를 타야한다는 한 노인의 말에 누군가 “배를?”이라 묻자,

“그럼 뻘을 헤엄쳐 가까?”라고 받았습니다. 대화 사이에 슬쩍 얹히는 이런 연륜의 위트가 좋았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쿵짝쿵짝”소리에 누군가 “각설이 왔어?”하니, 한쪽에서 “oo는 기어서 각설이 보러갔네”하고 맞장구를 칩니다. 장바구니 든 채 노구를 이끌고 굳이 보러갔다는 말을 그렇게 표현했습니다. 막걸리를 제게 권하던 한 어르신은 “한 잔 마셨다”고 답하자, “한 잔 잡수면 먹으나 마나요”하며 기꺼이 한 잔을 더 부어 주셨지요. 

 

그때 이웃집 아주머니가 들어와 원장에게 곧 단수가 된다고 물 받아 놓으라 했습니다. 얘기는 금세 단수로 옮겨갑니다. “대목에 웬 단수여?” “우리 임자(도)는 하루 나오고 하루 안 나와” “워메~ 섬은 섬이네” “그래도 찔찔이라도 나오면 괜찮데...” 당장 줄줄이 머리를 감아야 하는 상황에 화가 날 법도 한데 동요 없이 여유로웠습니다. 원장은 웃으며 큰 ‘다라이’에 물을 받았습니다. 몸이 불편한 할머니들이 미용실 문 밖에 어정쩡하게 엎드린 채 바가지 물로 머리를 감았습니다. 누구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짜증내거나 화내지 않았습니다. ‘도시에서 이런 날, 이런 상황이었다면...’하고는 상상하게 됩니다.

 

 

 

 

 

에덴미용실은 ‘지혜로운 할머니들이 모이는 농촌의 살롱’이라 해도 되겠다 싶었습니다.   

인사하고 미용실을 나서는 저를 향해 어르신들의 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집 나서면 고생이제. 밥 잘 챙겨 묵고, 잘 가쇼잉~”

 

yoonjo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