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두루미를 찍기 위해 한 10년 만에 강원도 철원의 민통선 안에 들어갔다왔습니다. 10년 전에도 이곳에서 재두루미를 찍었습니다. 지나며 보이는 농로가 익숙해서 얼마 전 왔다간 듯했지요. 10년 세월이 그런 식으로 지났다 생각하니 서글퍼졌습니다.
드넓은 철원평야를 바라보니 서 있으니, 초년병시절 가창오리떼를 찍기 위해 천수만 간척지에 서 있던 저와 시간을 건너 연결됐습니다. 당시 지평선처럼 아득한 간척지에서 지구에 남은 마지막 인간처럼 홀로 서서 한 시간여를 보냈습니다. 제 삶에 다시없을 경험이었습니다. 특별한 감상에 빠졌었지요. 살짝 스치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 ‘자유롭다’ ‘편안하다’는 느낌이 더 크게 남았습니다.
민망한 얘기지만, 당시 취재차량 운전하시는 형님이 거친 엔진소리를 내어 새떼를 날게 했습니다. 그렇게 날아오른 새떼를 찍어 ‘군무’라는 설명을 붙였었지요. 당시 생태사진을 찍는 사진가들이 분노하던 일부 사진기자의 만행이었습니다. 그때 주변에 다른 누군가라도 있었다면 차마 그리하지는 못했겠지요.
그 후로 16,7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저 멀리 재두루미떼가 가득 앉아 벼 낟알을 쪼았습니다. 차량은 멀찌감치 세웠습니다. 가져간 것 중 제일 긴 망원렌즈를 들고 조용히 다가갔습니다. 가까이 접근하기보다, 쓸 수 있는 최소한의 사진을 찍을 최대한 먼 거리까지만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살금살금 다가간 것은 찍기 전에 날아가 버릴까 조심한 것이기도 하지만 두루미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겠다는 의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면 취재 자체를 하지 말아야하는 것이지만요.
흔히 ‘군무’ 사진에는 ‘장관을 이루고 있다’라는 류의 사진설명이 붙습니다. ‘새떼 사진'은 곧 ‘군무’라는 강박이 있지만, 그 사진 뒤에 스트레스를 주는 행위자를 짐작하게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새들도 나름의 ‘입장’이 있지 않겠습니까. 최대한 멀리서 최소한의 시간만 촬영하려 했습니다. 그럼에도 제 인기척에 반응한 재두루미들이 내키지 않는 군무를 펼칠 땐 좀 미안했습니다. 결국, 이 순간에 찍은 사진이 오늘자 지면에 나갔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섰던 철원평야. 그 찰나 같이 느껴지는 세월 속에서 ‘그래도 나는 변하고 있었구나’ 싶어 조금 위안을 얻습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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