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뻗치기를 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뻗치기는 일종의 ‘기다림’인데 설렘은 전혀 없는 그런 막연한 기다림이지요. 언제 끝날지 몰라 더 지루하고 길게 느껴집니다. 늑장 부리던 검찰이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관련 재단과 자택 등을 압수수색 했습니다. 데스크 전화를 받고 달려간 곳은 최씨의 신사동 자택이었지요.
이미 와 있던 타사의 사진기자들이 반겨줍니다. 동료기자들이 모인다는 것은 이날 9곳의 압수수색 장소 중에서도 비중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죠. 더 중요한 건 ‘덜 외로우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긴 시간 버티며 의지할 사람이 왔다는 것이지요.
종일 한 공간에서 같은 목적으로 뻗치다 보면 애틋함이 솟아납니다. 그동안 왜 안 보였나, 어떻게 지냈나, 그간 어떤 재미난 일들이 있나 등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주택, 아이 교육 등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이 오갑니다. 긴 시간 얼굴 맞대고 있으면 못할 얘기가 없지요. 길게 느껴지는 시간을 건너기 위해서는 어떤 말이라도 뱉어내야 하는 겁니다. 대체로 ‘나만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위안이 크지요.
기다림의 목적이 같은 자들은 신문이니 방송이니 하는 매체를 가리지 않고 서로 마음들을 씁니다. 나이에 따른 체감 정도는 다를지언정 다 고생하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최순실의 ‘명품 구두 신발장’ 사진도 그렇게 찍을 수 있었습니다. 압수수색 중이어서 최씨의 집으로 들어갈 순 없었지만 아래층 계단까지는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신발장까지 접근이 가능하다는, 그 안에 명품 구두들이 많더라는 것을 먼저 알게 된 기자가 정보를 공유해줍니다. 함께 밥 먹고, 커피 마시고, 간식 나눠먹던 동료를 제쳐 두고 혼자 몰래 무언가를 찍는다는 것은 적어도 뻗치기의 현장에서는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모양입니다.
압수물을 담을 박스가 몇 개 들어가고도 한참이나 시간이 걸리자 “뭐 들고 나올 거나 있겠나.” “적당히 시간 때우고 있는 거 아닌가.” “보여주려 하는 거니 다른 데로 빠지진 않겠지?” 뭐 이런 얘기들로 은근한 조바심을 드러냅니다. 압수수색은 해가 지고 주위가 깜깜해지고 나서 끝이 났습니다. 8시간 이상을 최씨의 빌딩 앞에서 기다렸고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 ‘허무한 몇 컷’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함께 뻗치던 기자들은 어둠 속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를 던진 채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사실 데스크는 두 시간 전쯤 “철수하라” 했지만 이미 기다린 6시간이 아까워 그냥 버텼습니다. 동료들이 여전히 지키고 있는 현장을 먼저 떠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요. 무엇보다 떠나자마자 압수수색이 끝난다면 이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눈치 보던 검찰이 뒤늦게 수사에 나서면서 압수수색, 소환 등 뻗치기의 날들이 늘 것 같습니다. 검찰의 수사의지에 달린 것이겠지만요.
뻗치기의 시간을 좀 더 잘 쓰는 방법을 매번 고민해보지만 뾰족한 답은 찾아지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뭡니까. 나라꼴이...'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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