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흘낏 본 일본

나이스가이V 2016. 10. 17. 12:35

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여행할 수 있는 곳이지만 제겐 그 마음이 잘 안 먹어지는 나라였지요. 7년 전 쯤 회사 출장이후 지난달에 요코하마와 고베로 출장 다녀왔습니다.

 

정치·역사적으로 여전히 오만불손한 나라이지만, 현지 사람들의 모습에서는 부러움이 일더군요. 우리와 다른 것이 보일 때 그게 새로워서 부러운 것으로 느껴지는 착시일 수 도 있겠지요. 정보가 넘치는 일본이지만 출장 일정 틈틈이 제 눈으로 일본스러운것들을 보려 했습니다. 아마도 블로그를 염두에 뒀던 것 같습니다. ^^

 

잊고 있다가 출장 다녀온 지 한 달이 돼 이 블로그를 끼적이는 것은 나라꼴이 말이 아니어서 어디 시선을 좀 피할 데 없나 싶었다는 게 그 이유지 싶습니다. 일본의 일상에서 느낀 단상입니다. 나흘 간 스치며 본 일본이어서 영 엉뚱하게 봤을 수 있는, 순전히 제 멋대로의 생각입니다.

 

노인.

입국장에서 들어서면서 젤 먼저 만난 현지인이 백발의 노인이었지요. 입국 심사대 앞에서 외국인들에게 줄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일흔은 더 돼 보이는 노인이 사무적이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맞아주었지요. 짐 찾는 곳, 카트 관리 등 공항을 벗어날 때까지 곳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이 보였지요. 고베에 도착해 탄 택시 기사도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습니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웠지만 이 연세에 운전을 다...’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노인이 많아서인지 기차역 승강장 벤치에 상대적으로 젊은이들이 서 있는 노인을 위해 자리 양보를 하지 않았습니다. 노인이 많아지면 노인에 대한 배려도 없어지는 걸까 싶었습니다


 

예의.

일본하면 반복되는 90도 인사로 상징되는 예의 아니겠습니까. 며칠 그런 인사를 받다보니 떠나올 무렵 제 인사의 각도도 거의 90도에 이르고 있었지요. 그들이 겉으로 표현하는 것과 속마음은 전혀 다르다는 말도 합니다만, 몸으로 표현되는 예의 뒤에 숨은 속이 다르다 하더라도 겉과 속의 거리는 그리 멀지는 않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한편 예의에 무례로 대하기가 어렵지요. 감정노동의 노하우가 아닐까 싶더군요. 자주보고 오래 볼 사이에는 다른 행동양식이나 언어가 있지 않겠습니까.

 

휴대폰.

휴대폰이 일상인 건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겠지요. 하지만 폰을 들여다보거나 통화를 하며 길 걷는 이는 아주 가끔 눈에 띄었습니다. 식당에서 휴대폰 들여다보는 이도 없고 마주 앉은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올려놓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와 다른 모습이지요. 지하철에서는 휴대폰을 끄거나 무음으로 해 놓으라는 방송이 주기적으로 흘러나왔습니다. 결국 몸에 밴 예의와 배려에다가 예의와 배려를 독려하는 것이 이런 문화를 만들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대화.

일본인들의 대화에도 예의와 배려가 깔렸습니다인상적인 것은 리액션이었습니다. 상대의 얘기 중에 ~” “~”하면서 추임새 같은 장단과 호응을 서로 주고받습니다. 앞 사람의 말에 집중하고 또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추임새는 대화의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지요.

 

지진.

일본하면 지진이지요. 출장 전 국내에도 위협적인 지진이 있었지요. 머무는 동안 크건 작건 지진을 경험할 수 있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그런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자려고 누운 숙소 밖에서 우웅~”하는 바람소리를 들었습니다. 땅이 움직이는 소리라고 상상했습니다. 지진이 잦은 나라 일본은 땅이 우는구나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지인이 일본의 지진소식을 전하며 조심하라고 문자를 보내왔지만 제가 현지에서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속도.

신칸센은 일본의 기술과 속도를 상징합니다. 신칸센은 여전히 놀라는 속도를 보였지만 창구에서 신칸센 열차표를 끊은 데는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신칸센의 속도와 발권 시스템의 속도는 비교가 되더군요. 조화롭지 않는 속도의 조합이었습니다. ‘속도가 선이자 경쟁력인 나라에 사는 제겐 그 속 터지는 발권시스템이 의아했지요. 물어보진 않았지만 속도에 대한 조절이나 균형이 아닐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이 없어서 그렇지는 않을 테지요느리다고 보채지 않으니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같은 이유로 거리에서 차량의 클랙슨 소리를 딱 두 번 들었습니다. 나흘 동안.


 

청결.

거리가 깨끗합니다. 적당히 깨끗한 게 아니라 인간미가 없을 정도로 청결합니다. 병적이다 싶을 정도였지요. 일본 거리의 쓰레기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여주는 것이 재밌는 사진작업이겠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의 강박일까요. 도시 내 차이나타운의 바닥도 깨끗했다면 더 말할 게 없을 것 같습니다.

 

 

디테일.

게살 음식이 담긴 작은 그릇 바닥에 꽃게 모양으로 오려 만든 비닐이 깔려 있었지요. 굳이 없어도 대세에 지장이 없는 것이 슬며시 미소 짓게 했습니다. 일본의 문화 곳곳에 스며있는 디테일이라 여겼습니다. 요코하마 일대의 야경을 찍기 위해 전망대에 올랐을 때 창밖의 야경을 위해 비상구등을 제외한 전망대 내부의 모든 불을 꺼두는 것도 디테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밖에.

거리 곳곳에 자판기가 정말 많았습니다. 당장의 필요보다 지진이 났을 때를 대비한 것이 아닐까요.

또 패션의 유행이 우리처럼 빤히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개성 있게 옷을 입는다는 말이겠지요.



삶이 차분하고 안정적이며 여유가 있어 보이는 일본과 국민들이 울화통에 가슴을 치며 너무 많은 걱정을 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나라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는데 한가하게 영양가도 별로 없는 얘기로 블로그 하나 때웠습니다. 그래서 좀 찔립니다.


yoonjoong


 

'사진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분을 위한 8시간  (0) 2016.10.28
나는 사기꾼이었다  (0) 2016.10.21
카메라가 낯설어 지던 날  (0) 2016.09.05
'할배·할매에게 클럽을 허하라'  (0) 2016.09.01
사진에 대한 예의  (2) 201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