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한국과 중국의 최종예선처럼 관심을 끄는 경기는 기자실 자리 잡기 경쟁부터 치열합니다. 경기 시작 전 대여섯 시간 일찍 가는 게 기본이지요. 시작 두 시간 전에는 자리 추첨을 합니다. 번호순대로 선호하는 자리를 고르고 명함을 붙입니다. 좋은 자리가 반드시 좋은 사진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런 자리를 차지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집니다. 자리 추첨의 운으로 취재사진 결과물의 운을 점쳐 보기도 하는 것이지요.
국내에서 하는 A매치 시간은 보통 오후 8시. 신문 마감시간과 물려 있어 마음은 바쁩니다. A매치 취재는 오랜만이었지요. 경험이 없는 것도 아닌데 시종 허둥댔습니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접이식 의자 하나의 폭 안에서 두 대의 카메라와 무릎 위에 펼쳐 놓은 노트북을 다뤄야 했습니다. 익숙하다 여겨왔던 카메라와 노트북이 낯선 물건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지요.
취재는 갈등의 연속입니다. 각각 300mm 렌즈, 70~200mm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중 당장 어떤 것을 들 것이냐 부터 고민입니다. 사진을 즉시 마감할까, 골이 터질 때까지 기다릴까, 마감하는 동안에 더 중요한 장면을 놓치지는 않을까, 골이 터진 뒤 세리머니 때는 어떤 렌즈를 들까, 세리머니는 이리로 뛰어올까, 저리로 뛰어갈까. 숱한 갈등과 조바심이 경기 내내 널을 뜁니다.
옆자리 앉은 스포츠지 동료기자를 힐끗 봤습니다. 몸과 카메라와 노트북이 일체가 되어 취재와 동시에 마감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동작에 경외감이 들더군요. 컨베이어 벨트 위의 반복되는 작업 같기도 하고 끊어지지 않는 매끈한 춤 동작 같다는 생각도 스쳤습니다. 흉내를 내보려고 해도 부자연스러움만 커졌습니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카메라에서 노트북으로, 노트북에서 카메라로 네 개의 메모리카드가 무질서하게 옮겨 다니고, 카메라를 어깨에 기댄 채 어정쩡한 자세로 몇 장의 사진을 골라 설명을 쓰고 전송을 시도했습니다. 전송 신호가 약해 사진이 가다가 말거나, 속이 타도록 느린 속도로 들어갔습니다.
매번 느끼지만 전후반 90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소파에 기대 앉아 맥주마시며 보는 축구와 경기장에서 일로 보는 축구가 같을 리 없지요. 카메라 앵글 밖의 상황은 알 길이 없어서 경기의 흐름도 골이 터지는 상황도 잘 모릅니다. 경기가 흥미진진해도 즐길 수 없는 그저 일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축구사진은 특유의 맛이 있습니다. 이거다 싶은 장면이 앵글 안에서 펼쳐질 때 셔터의 요란한 소리와 진동은 답답했던 가슴을 뻥 틔워줍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지요. 국회 출입을 하다 보니 정치사진과 비교하게 됩니다. 정치사진의 애매함, 답답함에 비해 축구사진은 명징하고 시원합니다. 시도 때도 없는 뻗치기와 주기적인 몸싸움이 정치사진의 바탕인데 비해 축구사진은 정해진 시간의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사진기자들 간의 몸싸움이 없어 깔끔합니다. 대체로 짜증을 유발하는 정치사진에 비해 선수들의 골과 세리머니 사진은 지친 삶에 어느 정도 위안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는 효과도 있습니다.
여하튼 그리 헤매면서도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날 경기 중 가장 좋았던 장면을 놓치지는 않았습니다. 자리 추첨에서 ‘1번’을 뽑은 운이 작용했을 겁니다.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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