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한 장을 보며 10년 전 요맘때를 떠올립니다. 새삼스럽게 지금이 ‘2020년 6월’이란 사실을 깨닫습니다. 기억을 더듬다 세월의 속도를 실감합니다. 사진은 10년 단위 같은 날 경향신문 기사를 살펴보는 모바일팀의 ‘오래 전 이날’이란 코너에 실렸습니다.
사진에는 짧은 머리의 청년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상황을 몰랐다면 눈물을 닦아주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우는 모습입니다. 정대세. 북한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펑펑 울었습니다.
10년 전 저는 남아공에 있었습니다. 월드컵 출장 중이었지요. 정대세의 눈물은 2010년 6월16일 요하네스버그에서 펼쳐진 조별경기 ‘북한-브라질’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인민 루니’ ‘인민 호날두’라 불리는 청년의 울음에는 월드컵 출전의 감동 이상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누군가의 눈물 앞에서는 숙연해지는 것이 인정일 텐데, 저의 반응은 ‘경기 시작도 안 했는데 쟤는 왜 울어?’ 수준이었습니다. 출전국 중 세계랭킹 꼴찌인 북한은 이날 랭킹 1위 브라질을 상대로 선전을 펼쳤고, 1대2로 패했지요.
이 눈물사진이 시선을 붙든 건 옛 취재의 추억이 돋아서기도 했지만, 그날로부터 정확히 10년 뒤 6월16일에 북한이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기 때문입니다. ‘눈물’과 ‘폭파’라는 개연성 없는 두 사건이 10년 세월을 두고 같은 날 터졌다는 사실이, 또 그 이유로 온라인페이지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반휴면상태의 블로그를 깨우기에 이르렀습니다. 북한대표팀 출신으로 국내 K리그를 뛴 정대세와 남북화해의 상징인 연락사무소. 뭔가 연결되며 의미가 일어나는 것도 같습니다. 눈물과 폭파의 두 장면을 번갈아보면 마치 허물어진 남북화해에 흘리는 눈물 같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억진가요. ^^
눈물사진은 당시 추억들을 줄줄이 소환합니다. 10년 전 한 달 출장의 절반 이상을 룸메이트로 지냈던 한국일보의 선배는 이듬해 회사를 그만두고 전남 구례로 내려갔습니다. 참 멋있었던 기자가 10년 세월에 제법 틀이 잡힌 농부가 되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질깁니다. 농부가 된 선배는 요즘 경향신문 인기연재물 ‘원유헌의 전원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형님~, 벌써 10년입니다.” 블로그 올려놓고 전화라도 드려야겠습니다.
또 하나. 당시 우리대표팀은 월드컵 원정 첫 16강에 진출했습니다. 벌써 몇 차례 우려먹었습니다만,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저는 경기사진이 아닌 제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남겼습니다. 볼 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건 그 위에 시간이 쌓여가기 때문이겠지요. 당시에는 좀 굴욕적이다 싶더니, 이젠 ‘기자생활 인생사진’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습니다. ㅎㅎㅎ
눈물사진 한 장이 결국 10년 전 사진을 뒤지게 만들었습니다. 추억 돋는군요. 취재사진 속에 가끔 끼어있는 기념사진 속 저는 30대였군요.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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