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으로 향했습니다. 한글날을 앞둔 8일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한국어학당 교원들이 노동환경 개선과 고용 보장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사진기자 선후배들과 주먹을 부딪치며 인사를 나누는데 부장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마감할 ‘B컷’이 없다."
토요일자 지면 고정코너 ‘금주의 B컷’에 쓸 만한 사진이 없다는 얘깁니다. 추석 연휴 뒤라 사진이 부족했으리라 짐작했습니다. 문자가 아닌 육성 전화는 어떤 절실함이 배어있기 마련입니다. 이는 ‘현장에서 마감용 B컷을 챙겨보라’는 완곡한 지시였지요.
‘B컷이란 무엇인가?’
솟는 질문을 눌러놓고, 바삐 움직였습니다. 뭐가 되든 찍어야했기 때문입니다.
‘B컷을 찍는다는 건 또 무엇인가?’
때마침 발언자로 나선 한 교원의 간결한 문장이 귀에 꽂혔습니다.
“(교원들은) 언제까지 그림자로 살아야 합니까?”
‘그래 그림자다!’
귀찮은 숙제를 누가 대신해준 것처럼 행복해져서 광장 바닥에 시선을 던졌습니다. 다행히도 그림자는 현수막을 들고 선 회견 참가자들 뒤로 드리워졌습니다. 광각렌즈를 들고 쪼그려 앉으니, 저만치 뒤로 세종대왕상도 친절하게 앵글에 들어왔습니다.
기자회견이 정리되고 부장께 문자를 보냈습니다.
“B컷 비슷한 거 됐습니다.”
‘아, 이건 또 무슨 말인가?’
B컷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면에서 선택받지 못했으나 여운을 남기는 사진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겠으나, 이걸 골라서 쓰는 건 또 다른 일이 되더군요. 어쨌든 이번 'B컷'의 생산과정은 그 정의를 벗어난 것이었습니다.
B컷 지면에 실을 만한 사진이 없다고 판단하는 건, B컷을 쓰겠다면서도 A컷을 가려내는 것과 같은 어떤 틀이 생겨버렸다는 말입니다. 결과로 보면, 이날은 B컷을 위한 B컷 같은 A컷을 찍은 셈이지요. B컷의 A컷이라. 그럼 나머지 사진은 B컷인가요, C컷인가요.
사진이 당일 지면 게재여부로 B컷의 지위를 얻는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더라도 지면 안에서는 B컷이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겠습니다. 하지만 모바일(온라인) 쪽으로 간다면 B컷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게 됩니다.
‘도대체 B컷이란 무엇인가?’
yoonjo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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