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멸치의 대가리를 땁니다. 수북이 쌓인 멸치를 보며 '언제 다 따나' 싶습니다. 한 마리씩 일일이 대가리를 따고 까만 똥을 빼냅니다. 이것은 확실히 노동입니다. 큰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요령이란 게 생깁니다. 곧 지겹다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눈은 까고 있는 멸치를 향하지만, 시선은 멸치에 있지 않습니다. 딱히 무엇을 보고 있지 않는, 초점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습니다. 노동은 탄력을 받아 계속됩니다. 그 즈음에 잡생각의 공간이 생깁니다. 그 공간에서 생뚱한 시선이 튀어나옵니다. 멸치의 표정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아마도 최후의 표정일 겁니다. 입 다문 놈, 비명 지르듯 입 벌린 놈, 대체로 무표정한 놈들 사이에 실실 웃는 놈. 억울한 마지막이었는지 눈들은 모두 말똥말똥. 대가리를 제거하는 것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