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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주의 경호

방한 중인 리커창 중국 총리가 국회의장을 예방한 지난 일요일 아침, 국회 주변에 경찰들이 분주했습니다. 이날 풀(POOL)취재(장소가 협소하거나 안전상의 이유로 하는 대표취재)라 일정보다 한 시간 먼저 국회에 출근했습니다. 국회 내에도 사복경찰과 경호원들이 배치돼 기자실로 향하는 저와 곳곳에서 눈길이 부딪쳤습니다. 비표를 수령하기 위해 접견장 앞에 갔더니 몸수색을 했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 화면을 확인시켜 달랍니다. 경호 매뉴얼대로 한 것일 테지만 얼마 전 독일 대통령의 국회 방문 때와는 차원이 다른 경호 매뉴얼이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수시로 드나드는 국회 출입기자인데 외부에서 들어온 경호원들이 이런 절차를 진행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일반인들이 있을 수 없는 휴일 아침에 국회 내의 이런 절차는 출입..

국회풍경 2015.11.03

국회의 시간

살다보면 나이가 들었구나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헛되이 지나가는 시간을 인식할 땝니다. ‘이 귀한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구나.’하고 말이지요. 국회 출입을 하면서 그런 일이 잦아졌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국회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말과 행동이 언론이 주목하는 전부입니다. 의원들은 국회에서 여러 형태와 조합의 회의를 통해 발언하고 행동을 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회의 일정은 대개 문자와 메일로 출입기자에게 미리 공지됩니다. 급히 잡힌 일정도 긴급 문자를 통해 알려옵니다. 의원들에게 중요한 회의는 기자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언론이 중요하게 봐서 의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회의일지도 모릅니다. 기자들은 보통 ‘9시’ ‘10시’ ‘14시’등 정시에 잡힌 회의 일정보다 조금 일찍 가서 자리를 잡습..

국회풍경 2015.10.05

세상을 움직인 한 장의 사진

세 살배기 아이 사진 한 장의 파장이 큽니다. 시리아 난민 꼬마 아일란 쿠르디가 터키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모습이 담긴 사진입니다. 야근을 하던 지난 9월2일 밤 아일란의 사진을 보았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송되는 외신사진 전용 화상데스크를 들여다보는 것이 야근 일 중 하나지요. 이 사진이 시선을 잡았던 건 물가에 엎드린 채 누워있는 아이의 모습이 잠든 것처럼 평온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진 속 얼굴에 파도가 밀려와 닿아 있어 아이의 죽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캡션을 확인하고 사진을 반복해 보면서도 지면에 이 사진을 쓰자는 말은 꺼내지 못했습니다. 외신으로 수없이 봐 온 난민 사진 중 조금 더 아픈 사진쯤으로 보고 넘겼던 것이지요. 또 아이의 주검사진을 신문에 쓸 수 있을까, 하는 나름 경험적 판단이..

사진이야기 2015.09.18

반어적 정치사진

국회의 사진도 그날의 ‘야마(주제, 핵심)’가 있지요. 사진기자들은 짐작한 상황을 노리거나 나름의 해석을 사진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19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가 개회되고, 지난 3일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했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야당을 비난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역시 여당 대표의 연설을 비판했지요. 두 사람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주는 것이 이날 사진의 핵심이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야당 대표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오후에 여야 대표가 함께 참석하기로 한 외부행사는 굳이 취재의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았습니다. 이날 행사 진행자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오래 진행했던 ‘뚝딱이 아빠’ 김종석씨였더군요. 아이들 눈에 정치인은 싸우는 사람일겁니다. 그..

국회풍경 2015.09.08

'설마'

북한이 포격 도발을 감행한 다음날 연천으로 향했습니다. 전날밤 딸래미는 울었습니다.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더러 오간 모양입니다. 아빠가 포탄이 떨어졌다는 연천 지역에 일하러 간다는 말에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던 겁니다. “아빠 가지마. 안 가면 안 돼?”라며 질질 짰습니다. 경험이 드문 아이에게 북의 포격과 더불어 난무하는 무시무시한 전쟁 언어들은 그대로의 공포로 다가올 테지요. 아이의 걱정과 달리 저는 연천으로 향하면서 ‘뭘 찍어야 하나?’를 걱정합니다. 전쟁의 가능성은 늘 존재하지만 ‘설마’하는 마음이 그 가능성을 압도합니다. 눈앞의 위기보다 코앞에 놓인 일에 더 신경이 쓰입니다. 비슷한 경험들로 인해 무감해졌기 때문이지요. 이 무뎌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

사진이야기 2015.08.31

Color of Africa

케냐, 에티오피아 등을 10여 일 동안 다녀오면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습니다. 이 사진들은 그간 허접한 글과 함께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우려먹었습니다. 좀 더 깊고 진하게 경험하고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사진은 두서없고 함께 쓴 글은 두루뭉술하고 부족합니다. 아직 올리지 못한 사진이 많지만 단물이 다 빠졌으므로 이번 아프리카 포스팅으로 출장 얘기는 마감하려 합니다. 언젠가, 어떤 계기로 아프리카를 기억할 일이 생긴다면 그때 또 다른 사진을 보일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에티오피아와 케냐의 도시와 시골을 오가면서 제 시선을 잡은 것은 ‘색’이었습니다. 색들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간 무채색 위주의 색에 눈이 익숙했다는 의미입니다. 원색은 보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피와 자연을 각..

사진이야기 2015.08.24

'잠보~ 케냐'

두바이 공항에서 케냐로 출발하기 전, 몇 달 먼저 케냐를 경험했던 후배의 카톡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나이로비 공항에서 경찰이 시비를 걸지 모른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돈을 바라는 것이라는 뉘앙스였지요. 도착비자 서류 한 장 작성하고 비용으로 50달러를 지불하자 그냥 쉽게 통과됐습니다. 짐 가방을 찾아 끌고 나가는데 경찰이 막았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가방에 담배 있냐?” “담배 안 핀다.” “오케이.” 그렇게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별거 아닌데 카톡 문자에 괜히 쫄았던 겁니다. 경찰이 사람 봐가며 시비를 거는 것이라 결론지었습니다. ^^ 숙소로 이동하며 극심한 교통 정체와 끔찍한 매연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프리카’하면 초원과 밀림을 먼저 떠올리는 수준의 얕은 지식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

사진이야기 2015.08.19

성경책 든 회장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자정쯤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습니다. 의정부교도소 앞에서 최 회장은 “국민께 심려 끼쳐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모은 두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었습니다. 교도소를 나서고 기자 질문에 답하고 준비된 차량으로 향하는 동안 그의 손에서 성경책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진 정지윤 기자 성경이 상징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수감 생활 중 성경책을 옆에 두고 읽었다는 메시지가 읽히지요. 그 안에는 회개와 뉘우침의 의미도 있고 조금 더 나가면 ‘새사람 됐어’ '나 달라졌어'라는 선언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진정성을 믿고 싶습니다만, 여하튼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궁금했습니다. 홍보담당 직원이 “회장님, 성경책을 왼쪽 손에 들고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했을까요. 최 회장..

사진이야기 2015.08.16

살람 에티오피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아디스아바바”를 반복해 발음하다보면 왠지 아프리카적인 낭만이 느껴졌습니다. 공항에 내려 차량으로 이동하는 동안 시선을 끌었던 것은 공항 앞에 줄지어 선 낡은 택시였습니다. ‘과연 저 택시들이 달릴 수는 있을까.’ 30년쯤 돼 보이는 택시는 ‘너덜너덜’했습니다. 차를 오래 타는 것이 미덕일 순 있지만 그것도 관리와 안전이 동반될 때나 가능한 말이겠지요. 해발 2000m가 넘는 에티오피아의 수도는 선선했습니다. 이곳의 날씨는 출장을 준비하며 알았습니다. ‘아프리카는 덥다’는 것을 진리처럼 알고 산 지난 세월이 좀 민망했습니다. 공항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길에서 목격한 주민들의 남루해 보이는 삶과 우리 일행이 머문 호텔의 그 현실적인 거리는 얼마쯤 될까 싶었..

사진이야기 2015.08.12

"다큐 하나 하자"는 그냥 안부였을까?

지난 6월 해외 출장 중 부서 단체 카톡방에 안부 인사를 남겼습니다. 경향신문 ‘지구의 밥상’ 기획 중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를 거쳐 케냐 나이로비에서 일정을 소화한 뒤 에티오피아로 출발하기 전날이었습니다. 케냐 일정을 끝낸 뒤 사진을 정리하며 골라낸 몇 장의 기념사진을 안부문자와 함께 보냈습니다. 뉘앙스를 알 수 없는 “(포토)다큐 하나 하자”는 K선배(보조데스크)의 답글이 즉시 돌아왔습니다. ‘건강 잘 챙겨라’는 통상적인 인사대신 말이지요. 그저 ‘잘 지내고 있구나’라는 말의 다른 표현쯤으로 이해했습니다. 국내 메르스 취재로 장기간 시달리던 터라 제가 보낸 한가한 기념사진에 골이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존 기획에 집중해야 하는데 또 다른 기획을 도모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며 거부의..

사진다큐 2015.08.09

몸싸움

취재현장의 ‘몸싸움’은 사진기자들에게 일종의 '취재 기술'입니다. 몸싸움이란 것은 정당한 것이고 어깨를 부딪치면서도 동료를 배려합니다. 좁은 현장에서 어깨를 밀어가며 사진을 찍다가도 위치가 좋지 않은 동료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기도 하는 암묵적이고 신사적인 룰입니다. 밀려서 좋지 못한 결과물을 얻었다고 동료를 탓하며 화내면 쪼잔하고 무능한 자가 되어버립니다. 몸싸움은 거칠다기보다 밀고 밀림이 유연한 물의 흐름과 같았습니다. 최근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 집안의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더 이상 '고상한' 몸싸움은 불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이 들어오던 모습을 뉴스 화면을 통해 봤습니다. 화면은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경호원과 취재기자, 사진기자, 영상기자들이 서로 엉겨 붙어 ..

사진이야기 2015.08.05

국회에 온 요원들

국회 정보위원회가 열리는 날은 부산스럽습니다. 국가정보원장이 출석하는 ‘비공개’ 회의이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장이 회의장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찍기 위해 기자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습니다. 지난 27일은 이병호 국정원장이 국정원의 해킹 의혹과 관련한 보고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국정원장이 오기 전, 요원(국정원 직원)이 확실한 이들이 기자들 사이에 섭니다. 동선을 확보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물리적 마찰을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더위에 땀을 삐질 흘리며 좁은 복도에 촘촘하게 선 기자들은 예민해 집니다. 요원들이 동선을 확보하고자 시야를 가릴라치면 “안 보이니 뒤로 좀 붙어 달라” “안으로 안 들어 갈테니 앉을 수 없나”하고 살짝 신경전을 벌입니다. 사실 요원들이 아니더라도 국회 소속 경위들이 기자들과 의..

국회풍경 2015.07.30

에티오피아의 멋 '커피 세리머니'

에티오피아하면 굶주림을 떠올립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아이의 축 늘어진 몸과 비정상적으로 커 보이는 눈이 함께 생각나지요. 지난달 며칠 에티오피아를 다녀왔다는 이유로 앞으로 커피를 함께 떠올릴 것 같습니다. 커피를 그저 단맛으로 흡입했던 저는 예가체프니, 시다모니 하는 것이 에티오피아 커피 브랜드였다는 사실을 현지에 가서야 기억해 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커피 맛을 알게 됐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커피의 멋을 경험했습니다. ‘커피 세리머니’라는 건데요. 에티오피아에서 귀한 손님을 맞는 전통의례랍니다. 처음 들었을 때 ‘설마 커피를 뿌려대는 것은 아니겠지'하고 생각했습니다. 현지 일정 중 방문했던 월드비전 사무소와 숙소였던 시골의 로지에서 커피 세리머니의 호사를 누렸습니다. 저를 포함한 일행을 ..

사진이야기 2015.07.29

장맛비와 동심

장맛비가 내렸습니다. 일부 지역엔 제법 큰 비가 내렸지만 서울에는 고만고만하게 내렸습니다. 블로그에서 두어 번 썼는데 비에도 성격과 각기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내리는 이 비는 어떤 비일까?’가 비 스케치의 미션을 받은 자의 첫 질문이어야 합니다. 비는 애매했습니다. 장마기간에도 변변한 비가 내리지 않아서 인지 가물었던 대지에 내리는 비는 반길 만 한 것이지요. 호우특보가 내린 일부 지역은 마냥 반가울 순 없겠지요. 게다가 태풍까지 북상한다고 하니 비의 색깔을 판단하기 애매했습니다. 강이 불어 위험하다느니 축대가 무너졌다느니 하는 돌발 현장이 없어 일단 비를 사건·사고가 아닌 서정적 시선으로 기록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차창에 맺힌 빗방울을 걸고 행인을 찍어봅니다. 이렇게 찍어서 참 근사하게 표현..

사진이야기 2015.07.25

현수막 정치

정당 회의가 열리는 국회 여야 대표실 또는 원내대표실에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당대표와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앉는 자리 바로 뒤에 걸립니다. 대표 등이 앉아서 발언할 때 정확히 머리 위로 글씨가 지나갑니다. 사진기자나 영상기자들이 잡는 앵글에 잘 들어가도록 제작된 겁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얼마 전 홍보위원장으로 브랜드 네이밍 전문가 손혜원씨를 영입했습니다. 소주 ‘처음처럼’ ‘참이슬’ 아파트 ‘힐스테이트’ 등을 탄생시킨 업계 '미다스의 손'이라는 군요. 손 위원장이 당의 현수막 디자인을 설명하면서 온라인에 올라온 사진기사를 인용했습니다. 대표 뒤에 걸린 현수막의 내용이 사진기사에 적절하게 잘 표현되는 것을 고려해 디자인했다는 겁니다. 정당 사진의 특징을 그새 파악한 것이지요. 머리 바로 위로 ..

국회풍경 2015.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