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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대가리를 따며

마른 멸치의 대가리를 땁니다. 수북이 쌓인 멸치를 보며 '언제 다 따나' 싶습니다. 한 마리씩 일일이 대가리를 따고 까만 똥을 빼냅니다. 이것은 확실히 노동입니다. 큰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요령이란 게 생깁니다. 곧 지겹다는 생각이 사라집니다. 눈은 까고 있는 멸치를 향하지만, 시선은 멸치에 있지 않습니다. 딱히 무엇을 보고 있지 않는, 초점이 없어지는 순간을 맞습니다. 노동은 탄력을 받아 계속됩니다. 그 즈음에 잡생각의 공간이 생깁니다. 그 공간에서 생뚱한 시선이 튀어나옵니다. 멸치의 표정이 들어옵니다. 그것은 아마도 최후의 표정일 겁니다. 입 다문 놈, 비명 지르듯 입 벌린 놈, 대체로 무표정한 놈들 사이에 실실 웃는 놈. 억울한 마지막이었는지 눈들은 모두 말똥말똥. 대가리를 제거하는 것은 이..

사진이야기 2015.02.22

배신당한 프레스 프렌들리

몇 달 전부터 다시 국회에 출입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2진이라 1진 선배의 부재 시에 국회 사진을 전담합니다. 1,2진 부재 시엔 후배인 3진이 커버하게 되는 구조입니다. ‘국회사진’이란 기본적으로 회의 사진입니다. 모든 사진거리가 회의, 회견, 토론회의 범주를 여간해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주로 앉아서 얘기하는 회의 사진에 ‘회의’를 갖기도 합니다. 내부적으로도 정적이고 심심하고 밋밋하고 늘 보던 사진은 지양하는 추세입니다. 회의 사진을 다르게 찍는다는 게 어디 쉽나요. 국회에 다시 와서 보니 사진기자 선후배들이 총리 후보인 이완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참 좋아하더군요. 이유는 표정이 풍부하고 제스처가 다양한 것이 이유입니다. 밋밋한 회의 사진에 다양성을 제공해주는 것이지요. 그는 사진기자들이 ‘사진이..

사진이야기 2015.02.12

여행사진 그리고 발품

데스크는 “콧바람이나 쐬고 오라”며 1박2일 트래블(여행) 출장 지시를 내립니다. 사진이 지면 절반을 차지하는 지면 특성상 콧바람의 여유나 설렘은 사실 없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부담을 갖고 떠나게 되더군요. 보통 여행지의 날씨에 민감합니다. 대체로 맑은 날이면 해가 뜨고 지는 주변의 시간 때에 빛의 변화나 빛의 색감으로 좋은 사진을 찍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뭐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처럼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좀 높다는 것이지 좋은 날씨가 곧 좋은 사진을 담보하진 않지요. 완성도가 떨어지는 사진을 안 받쳐준 날씨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여행사진에서 날씨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발품입니다. 사진의 완성도에 발품은 상당한 기여를 합니다. 여기서 발품이라 함은 그저 열심히 돌아다니는..

사진이야기 2015.02.04

물그림자

물에 투영된 산과 겨울나무와 석탑이 선명하다. 한 폭 그림처럼 시선을 잡는다. 거꾸로 봐도 다르지 않다. 무엇인 실재이고 무엇이 현상인지 혼란스럽다. 하지만 바람에 흔들리고, 빛이 변하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물그림자다. 땅을 딛고선 것과 달리 물에 투영된 사물은 불안하다. 그래서 거짓이다. 눈을 즐겁게 하지만 만질 수 없는 신기루다.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신기루가 진짜를 대체하고 있을까. 나는 내 속에 얼마나 많은 거짓과 가짜를 참과 진짜로 가장하고 있는 걸까. 20여 년 전 복원됐다는 저 석탑도 백제의 탑은 아니다. 거짓을 투영하고 있는 연못 위 또 다른 거짓이라. 거짓의 거짓은 참인가, 더 큰 거짓인가. 물그림자를 보고 든 상념. 2015년 1월 23일. 익산 미륵사지에서 yoonjoong

만화 보고 건진 다큐

새해 첫 포토다큐는 이왕이면 밝고 희망적인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지요. 한 10년 전쯤 새해에 한 기업의 신입사원 연수를 다큐지면에 썼던 기억도 났습니다. 소재를 고민할 즈음해 장안의 화제 고졸사원 장그래의 분투를 그린 드라마는 못 보고 대신, 만화 을 재밌게 읽었습니다. 만화를 덮자마자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졸 신입사원’을 다큐 소재로 결정한 것이지요. 서울시교육청을 통해 두 곳의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한 곳의 취업학생 명단과 담당교사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이미 사회인이 된 세 친구를 섭외했습니다. 각기 다른 직업이어야 할 것 등 나름의 기준으로 엄선(?)한 친구들입니다. 다큐 취재를 하면서 결국 ‘성공’한 친구들의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취업하지 못한 더 많은 친구들..

사진다큐 2015.01.25

수첩 찍기의 함정

수첩 사진 한 컷의 파장이 큽니다.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이 한 매체 사진기자의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한 메모가 적혀있었고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누가 그러길래 그냥 적었는데 그게 찍힌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날 저도 본회의장에 있었지만 김무성 대표를 주시할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물 먹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가끔 국회 본회의장에서 찍힌 의원들의 메모나 휴대폰 문자메시지 등이 이슈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사진기자들은 국회 본회의가 열리면 뒤쪽 2층에서 의장석 방향을 보며 사진을 찍습니다. 국회의원들 역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앉아 있기 때문에 사진기자들은 의원들의 뒤쪽에서 내려다보게 됩니다. 인터넷으로 무엇을 검색하는지, 무슨 자료를..

사진이야기 2015.01.18

"고마워요 샤이니월드"

지난 12일 제 블로그에 비밀댓글이 달렸습니다. 댓글이 잘 붙지 않는 블로그라 댓글이 표시되면 설렙니다. 제법 긴 댓글이었습니다. 글을 읽으며 뭉클해졌습니다. “···몇 달 전 세월호 희생자이자 그룹 샤이니의 팬이었던 다영양의 이야기를 기자님 블로그를 통해 전해 들었습니다. 당시 글에 다영양이 사고나기 전 샤이니의 공연도 보러 갔다고 하셨었지요? 제 짐작으로는 다영양이 본 공연이 올 초 3월 7일~8일 양일간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있었던 샤이니의 콘서트였을 것 같아요. 저도 갔던 공연인지라, 비록 다영양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지만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함께 환호하고 노래 불렀을 다영양을 생각하며 눈물이 났더랬습니다. 이렇게 댓글을 남기는 건 다름이 아니오라, 다영양이 참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로..

사진이야기 2014.12.31

내 자식같은 사진

사진을 찍기도 전에 사진 달라는 취재원의 말에 삐졌습니다. 꼭 필요하다면 사진 찍은 후에 물어도 될 것을. 작가라는 그는 쉬워도 너~무 쉽게 사진을 달라했습니다. 물론 “주세요”했는지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는지 정확한 멘트는 생각나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제 입장에서는 마찬가집니다. 이미지 범람의 시대에 사진은 공짜라는 인식도 한 몫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음 상해도 회사 찾은 손님인데 버럭 화낼 수도 없고 대신, 찍는 사진 컷 수를 대폭 줄이는 식으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내 사진은 그리 쉽고 간단한 사진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령 비슷한 인물사진이 있는데 하나는 1년차 때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하나는 15년차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면 이 사진은 비슷하다 할 수 있을까요. 그 전..

사진이야기 2014.12.29

내 멋대로, 2014 내가 만난 사람들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을 훑어보았습니다. 올해 제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과 사진 찍을 당시 상황들이 빠르게 스쳐갔습니다. 사진으로 기록된 순간은 더 또렷하게 기억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내가 올해 만났던 사람들을 정리해 보자'는 생각을 문득 했습니다. 매년 10명 정도 그해 만난 사람을 기록해 두는 것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4년에 제가 만난 사람을 제 마음 가는대로 골라 정리했습니다. 여기에 끼지 못했다고 섭섭해 하실 분은 없으실 테지요. 이런 식으로 2014년을 정리해 봅니다. 건축가 승효상 대한민국 대표 건축가입니다. 경향신문에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를 연재하고 있지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는 ‘백사마을’ 재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분입니다.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마을은..

사진이야기 2014.12.23

실패한 새 사진

가창오리를 수소문했습니다. AI(조류플루엔자)를 매개했다하여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한 겨울철샙니다. 새 사진을 찍어본 지 오래고 해마다 변하는 서식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습니다. 이 분야에 전문가인 J일보 A선배께 전화를 했지만, 가창오리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건질 수 없었습니다. 선배의 조언대로 철새가 많이 관찰되는 지역의 철새조망대와 지자체에 문의를 했습니다. 결국 가창오리가 해남 지역에 가장 많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됩니다. 오랜만에 새를 찍으러 가는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해남 지역에서 철새 모니터링하는 분과 연락이 닿았기 때문입니다. 예보와 다르지 않은 날씨와 적절한 렌즈의 선택만이 관건이었지요. 머릿속에선 언제가 보았던 가창오리의 군무 사진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기가 막힌 사진이었지요. ‘..

사진이야기 2014.12.17

시나리오 사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지난 12일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과 승무원 하기’ 논란에 대해 사과를 했습니다. 조 회장의 회견 속보에 대한항공 본사 로비로 기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두 시간 후쯤 조 전 부사장이 조사를 받기 위해 인근 국토부 조사실로 출석할 예정이었기에 ‘혹시 조 회장 부녀가 함께 사과회견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예측을 합니다. 사진기자들의 상상은 날개를 답니다. ‘회초리를 들지 않을까...’ 3면이 기자로 둘러싸인 로비로 조양호 회장이 걸어 나왔습니다. 선채로 잠깐 앞을 주시하더니 깊숙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사과문을 천천히 읽어가다 다시 인사를 했습니다. 이날 사과 회견 동안 대여섯 번 정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살면서 90도 인사를 얼마나 하셨겠습니까. 조 ..

사진이야기 2014.12.15

앗긴 낭만에 대하여

엊그제 첫 눈이 내렸습니다. 기상청 기준으로는 첫 눈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국회에 출입하는 사진기자들은 이날 여야의 예산안 처리를 앞두고 일정이 바빴습니다. 여야 아침 회의 등 촘촘한 오전 일정을 소화하느라 국회의사당 밖의 날씨에 그리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아니, 외면했다는 말이 맞겠네요. 당 대표실과 원내대표실, 회의장을 오가는 사각형의 복도는 꼭 다람쥐 쳇바퀴를 연상케 했지요. 유리문 밖으로 제법 굵은 눈발이 날렸습니다. 회의장으로 향하는 사진기자들은 밖으로 흘낏 눈길 한 번 주고는 걸음을 재촉합니다. 찰라의 시선의 의미를 저는 읽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지나쳤지만 가늘었던 눈발이 굵어지면 그것도 한순간인지라 카메라에 담아야겠다는 욕심이 일어납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만 목격될 수 있는 ..

사진이야기 2014.12.03

사진 번뇌

충북 영동 백화산에 안긴 반야사는 일찌감치 해가 졌습니다. 일학 스님과 차담을 나눈 뒤 컴컴해진 대웅전 앞마당으로 나섰습니다. 방금까지 실내조명에 적응된 눈에 서서히 밤하늘의 별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둠에 완전히 눈이 적응될 즈음 하늘 가득한 별들이 쏟아질 듯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그 장면은 “아~”하는 감탄사 이상으로 표현할 길이 없네요. 별들을 한참 올려다보다 초등학생 때 경남 어느 산골로 갔던 교회 수련회를 떠올렸습니다. 그때 밤하늘에 별들은 어린 저를 압도했습니다. 은하수라는 것을 그날 처음 봤습니다. 그날 이후 세뱃돈으로 싸구려 천체망원경을 사서 하늘을 살피곤 했었지요. 템플스테이를 취재하러 온 절간에서 별 때문에 예배당 수련회를 떠올렸다는 게 재밌다 생각했습니다. 앞서 해가 넘어가기 전..

사진이야기 2014.11.10

가을을 타다

나뒹구는 낙엽을 보며 문득 ‘쓸쓸함’을 느꼈습니다. 찬바람 불고 물든 단풍잎 흩날리니 ‘막연한 그리움’도 고개를 들었습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기껏 ‘가을이니까’ 내지는 ‘다들 가을에는 그렇지 않나’하는 질문으로 되받습니다.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낙엽을 보며 싱숭생숭해지는 마음은 요맘때 많은 이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들이 만들어 놓은 '강요된 감정'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품어봅니다. 지인들과 술자리가 많아지는 가을입니다. “날 선선해지면 한 잔 하자”했던 여름의 약속이 드러난 핑계이지만, 선선한 바람과 문득 찾아드는 외로움에 술 한 잔의 위로를 서로 주고받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그 실체가 조금 모호한 감정이지만 이번 가을에는 쓸쓸함이든 그리움이든 외로움이든 그대로 한 번 ..

세계적 사진가와 그냥 사진기자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가 존 스탠마이어는 자신의 휴대폰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흥미롭게 본 것은 한국의 일상과 도처에 널린 ‘다양한 색’이었습니다. 두루마리 휴지가 걸린 포장마차, 그릇에 담긴 반찬들, 화장실 소변기 위에 놓인 꽃, 비닐봉지 등에서 발견한 색들을 그의 개성적인 앵글로 보여줍니다. 정말 흥미롭다는 것을 그는 천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위 사진 'Signal'로 World Press Photo (WPP·세계보도사진전) ‘2013 올해의 사진상’을 받았고, 세계의 식량위기, 민주화 운동, 빈곤과 환경 문제 등 선 굵은 작업을 하는 그의 눈에 한국의 사소한 것들은 특별했던 겁니다. 식량위기에서 포장마차 두루마리 휴지까지 그의 관심과 그것을 포착하는 시야는 대단히 넓..

사진이야기 2014.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