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8 5

담벼락에 걸린 눈

영화 '이웃사람'의 원작 만화가 강풀씨의 인터뷰를 앞두고 시간이 남아 인근에 있는 팔판동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삼청동길 들어서서 왼쪽으로 있는 동네입니다. 조선시대에 열덟 명의 판서가 나왔다고 팔판동이랍니다. 묵직한 유래에 비해 이름은 다소 가벼워 보이는 동네지요. 아담한 이 동네는 골목을 따라 예쁜 카페촌이 형성돼 연인이나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카메라를 든 이들도 많구요. 일부러 오기 힘든 동네고, 시간은 때워야 하고, 오랜만에 여유를 누렸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어슬렁 거렸습니다. 한 번 지났던 골목인데 어떤 끌림이 있어 다시 한 번 걷게 되었지요. 저를 끌어들였던 것의 정체는 '벽에 그려진 눈'이었다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매서운듯 하면서도 조금은 어리숙해 보이는 눈이었지요. 전봇대 옆, 쓰레기 ..

아메리카노를 사랑한 남자

유시민 전 통진당 공동대표가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진보정치 혁신모임 회의실로 들어섰습니다. 최근 '아메리카노 논쟁'을 의식한 듯 만면에 미소를 지었고, 이를 본 기자들과 회의 참석자들이 일제히 웃었습니다.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는 유 전 대표와 손에 쥔 커피에 집중됐지요. 유 전 대표는 자리에 앉자마자 "의원회관은 1800원이에요!" 국회 본청보다 아메리카노가 200원 싸다는 얘기였지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2200이고..." 천진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어디서 커피 CF 안들어 오나?"하고 너스레를 떨었지요. 회의 참석자들과 기자들은 다시 한 번 크게 웃었습니다. 회의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유시민 전 대표가 커피를 입에 대는 순간마다 플래시는 터졌습니다. 유 전 대표와..

사진이야기 2012.08.23

노동자의 얼굴, 2012

집회 현장에서 그렇게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고, 노골적으로 얼굴을 클로즈업 한 적이 제 기억엔 드뭅니다. 그는 아스팔트도 녹일 듯 뜨겁던 날, 국회 앞에서 열린 '용역의 폭력'을 고발하는 노동자들의 회견에 나왔습니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은 절실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일을 핑계로 서둘러 자리를 뜨면서도 그 눈빛이 밟혔습니다. 불면의 밤을 선사했던 올림픽과 그 대미를 장식한 축구 한-일전이 선사한 기쁨에, 그의 고통, 노동자의 아픔은 가려지고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기업이 고용한 '용역 폭력'의 실태를 공개하는 회견장에서 한 노동자의 눈과 마주쳤다. 짧게 깎은 머리에 검게 그을린 눈빛엔 그간의 고통과 분노, 아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국격'을 강조..

의원님, 쾌변이 가능하십니까?

'쾌변이 가능 하십니까?' 책 많이 읽기로 소문난 민주통합당 최재천 의원의 국회 의원회관내 사무실에 딸린 화장실 변기 앞에는 두 권의 책이 나란히 놓여 있었습니다. 와튼스쿨 최고 인기강의를 모은 와 정책토론회 책자. 책 사이사이에는 포스트잇이 가득 붙었고, 페이지마다 형광펜으로 그은 밑줄이 가득 했습니다. 분 단위의 시간을 쪼개 생활한다는 최재천 의원은 화장실에 머무는 몇 분을 아껴 책을 읽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홀로있는 공간에서 집중이야 잘 되겠지만, 책들을 보아하니 '쾌변'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ㅎㅎ 한 달 전쯤 대법관 청문회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최재천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 서가를 찍으러 갔었지요. '의원들의 서가'라는 경향신문 토요판 기획이었지요. 의원회관에 입주한 지 오래되지 않..

사진이야기 2012.08.13

외로운 등

개화산에 취재갔다 등산로에서 우연히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어르신의 배낭에는 개 한 마리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 '재밌는 장면'이다 싶어 서너장을 급히 찍었습니다. 이 사진을 찍을 때는 '개가 참 호강하는구나' 정도의 생각이었지요. 수요일자 '포토에세이'에 쓰려고 사진을 '꼬불쳐' 놓고 몇 번이고 꺼내 보았습니다. 볼때마다 사진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애초에 '재미있었던' 사진은 온데간데 없고, 오히려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묵직함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최근 가난과 외로움에 힘든 노년을 보내던 노부부의 자살 사건도 사진 위에 어른거렸습니다. 사진 속 어르신 앞으로 길게 나있는 등산로도 살아갈 많은 날들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찍을 당시 개를 먼저 봤다면, 다시 사진을 볼때는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