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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 사진기자의 이야기'

가을입니다. 아련한 생각에 잠기게 하는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비 오는 날엔 무슨 생각들 하시나요? 저는 잠에서 깨자마자 창밖을 내다보며 이 비를 어디 가서 어떻게 찍어야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가을비가 우울한 것이 아니라 비를 보며 일을 생각하는 저의 상황이 우울한 것이지요. 제가 유별난 게 아니라 날씨에 민감한 보통 사진기자들의 습관입니다. 수시로 내리는 비지만 다 같은 비가 아닙니다. 비라는 것도 '어떻게 불러주느냐'에 따라 의미와 때론 이름을 갖습니다. 어제의 비는 막바지 더위를 물리고 추위를 부르는 비였지요. 추위 끝에 오는 반가운 봄비, 애잔한 감성을 부르는 가을비, 지긋지긋한 장마나, 물난리를 일으키는 기습 폭우 등 계절과 비의 성격을 따져 의미를 부여하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를 고민하게 되는..

사진이야기 2013.09.25

다큐 뒤에 남는 것은-프린지 예술가들

이번 다큐에서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예술가들을 만났습니다. 6년 전쯤 축제 현장 모습을 스케치해 다큐로 한 번 다뤘기에 이번에는 예술가에게 직접 다가가기로 일찌감치 마음을 굳혔습니다. 참여한 수 많은 예술가 중에 어떤 예술가를 선택할 것인가, 긴 고민을 한 끝에 한 영화감독의 작업에 꽂혔습니다. 그는 프린지에 참여한 예술가들을 즉흥적인 방식으로 담아내는 낯선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포함해 그의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 만나는 예술가들의 얘기를 엮어 담아보자는 생각에 미친 것이지요. 이참에 저도 예술가가 되어봅니다. ‘사진을 찍는 내가 영화감독이 파인더를 통해 찍는 예술가와 그 작업을 찍는다’ ‘예술을 담는 그 예술을 담는다’ 장고 끝에 닿은 개념이라 뭔가 그럴듯했고, 스스로 이 시도가 ‘예술적이다’라..

사진다큐 2013.09.16

힛팅수 경쟁

컴백 가수의 쇼케이스를 난생 처음 취재 간 저는 행사장 입구에서 낯익은 타사 후배의 얼굴이 보이자 반가워서 외쳤습니다. "나 좀 케어 해줘~!" 후배는 프레스카드를 수령하는 절차와 무대 앞에 자리 잡는 것을 도와주었습니다. 혼자 못할 것도 없지만 ‘뻘쭘함’에 늘 이런 식의 민폐를 끼칩니다. 한 시간 반 전에 추첨을 통해 자리배정은 이미 끝나 있었구요. 사진, 영상, 취재기자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지요.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 간간이 앉은 아는 선후배들과 떠들썩하게 인사를 나누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산만한 저 양반은 누구야?’하는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걸그룹 카라가 등장해 새앨범 타이틀곡 ‘숙녀가 못 돼’를 선보일 때 셔터를 누르면서도 곡 사이사이에 쇄도하는 셔터 소리가 연주의 요소인듯 섞여 ..

사진이야기 2013.09.05

내 카메라의 대화

사진을 가르쳐 달라는 친구의 부탁을 주제넘게 받아들였습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하나 고민했습니다.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을 얘기해볼까 하다가 ‘그 방법을 알면 너부터 잘 찍어라’는 제 안의 질타에 즉시 접었구요. ^^ 그리하여 첫 시간에는 주어진 빛에 적정한 노출을 얻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기로 했습니다. 감도와 조리개, 셔터를 잘 설명해야 했지요. 제게는 너무 익숙한 것이지만 이걸 초보자인 친구에게 쉽게 풀어 설명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일이더군요. 먼지 쌓인 채 방치된 사진서적도 들춰 보았습니다. ‘감도(ISO)’가 ‘감광속도’의 줄임이라는 것을 민망하지만 처음 알았습니다. 그리고 의심했습니다. 내 수족처럼 다룬다 생각했던 카메라를 나는 제대로 알고 쓰는가, 누군가에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안다고 할..

사진이야기 2013.08.29

이산가족상봉

지난 2004년 금강산에서 열린 제10차 이산가족상봉을 풀단의 일원으로 취재 했습니다. 바로 전 제9차 상봉당시 금강산 자락에 큰 글씨로 새겨진 ‘천출명장 김정일 장군’에 대한 우리 정부인사의 농담조 발언으로 상봉이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었지요. 그 발언을 문제 삼아 일정을 중단시켰던 북측 인사는 '인생역전'에 성공했다더군요. 금강산으로 취재를 가기 전 통일부에서 받은 교육에서는 온통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었지요. 저의 말과 행동이 상봉행사를 중단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살짝 쫄기도 했었지요. 앞선 상봉에서의 해프닝 때문인지 북측 인사들의 감시와 은근한 취재방해, 트집 잡기가 심했고 그래서 기분이 더럽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한동안 중단됐던 이산가족상봉 재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이산가족..

사진이야기 2013.08.20

'영웅'

서울시청 외벽에 걸린 대형 걸개의 글귀가 눈에 띄었습니다. 스쳐 지나며 읽은 문구에서 조그만 위안을 얻으며 흐뭇했습니다. 때마침 신호에 걸려 차창을 내리고 사진을 한 컷 찍으려는데 벤치에 누운 지쳐 보이는 남자가 글과 함께 앵글에 들어왔습니다. ‘영웅’과 ‘드러누운 남자’ 사이에는 큰 간극이 있어 보였습니다. 글귀와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간사하게도 바로 조금 전 위안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 수도의 가장 상징적인 곳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담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도처에 널린 무기력하고 좌절적인 삶에 대한 역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검찰이 되겠다”는 검찰의 말처럼 공허하기도 했습니다. ‘난세영웅’이라 했으니, 너도나도 영웅이어야 할 어지러운 ..

로버트 카파와 나

어느 입사시험 면접에서 면접관이 물었습니다. “로버트 카파가 누굽니까?” 짧은 질문에 짧게 “전쟁터를 누비던 종군 사진기자입니다”라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지요. 다행히 면접관은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 면접관은 회사 선배가 되었습니다. 로버트 카파의 명언 “If your photographs aren't good enough, you're not close enough(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아서다)”를 그 대답 뒤에 갖다 붙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답이었을 것을. ^^ 전쟁사진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 멋진 말을 사진기자 초년병때 처음 접한 뒤 고개를 끄덕댔을 때는 '다가간다'의 의미를 피사체와의 ‘물리적 거리’로 받아 들였..

사진이야기 2013.08.08

투신 현장에 내가 있었다면

사진기자 케빈 카터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찍은 ‘독수리와 소녀’는 1994년 퓰리처상을 수상합니다. 굶주려 힘없이 웅크린 소녀를 먹잇감으로 노리는 것 같은 독수리의 모습은 전세계에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이 사진에는 사진가에 대한 찬사뿐 아니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아이를 먼저 구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비난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케빈 카터는 시상식이 열린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자신의 차에서 자살을 했습니다. 사진에 대한 논란이 그가 자살한 이유라는 주장도 있지만 그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이지요. 다만, 그가 취재했던 수많은 전쟁과 죽음, 기아의 비참한 현장이 그를 늘 괴롭혔고 끝내 이를 견디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케빈 카터가 몇 장의 사진을 찍자 독수리는 소녀를 두고 날아가 버렸다고 합..

사진이야기 2013.07.30

어릴적 영웅 유남규

1988년 동네 곳곳에 탁구장이 생겼고 연일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 지하에도 탁구장이 생겼습니다. 밥숟가락 놓자마자 탁구장으로 달려가도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게 다반사.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탁구는 큰 즐거움이었고 탁구장 주인들에게는 든든한 밥줄이었습니다. 그해 서울올림픽에서 유남규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면서 탁구의 붐이 일었던 것이지요. 당시 영웅이었던 유남규는 이제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었습니다. 지난 18일 그의 사진을 찍기 위해 태릉선수촌을 찾았습니다. 앞서 15일 날 서울 시내 호텔 커피숍에서 인터뷰가 진행됐지만, 사진 찍기에 적절한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약속을 잡아 선수촌을 찾은 것이었지요. 오후 대표팀 훈련시간에 맞춰 3시쯤 도착했습니다. 유 감독이 전화를 걸어..

사진이야기 2013.07.23

이제 제 어깨 내어 드립니다!

5년 전 축구하다 다리를 다쳤습니다. 깁스를 풀고 오랜만에 현장에 나갔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한국일보 최흥수 기자의 따스함을 그때 블로그에 썼었네요. 진짜 한국일보 기자들이 싸우고 있습니다. 법원 결정으로 기자들이 편집국으로 들어갔지만, 취재와 제작은 막힌 상태입니다. 여전히 짝퉁 한국일보가 나오고 있습니다. 최흥수 선배도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5년 전 제게 그러셨듯 이제 제 어깨를 내어 드립니다. 힘 내시고 꼭 이기십시오!!

사진이야기 2013.0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