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야기

'내신반대촛불집회에서'

나이스가이V 2005. 5. 10. 18:52



지난 주말 내신등급제를 반대하는 고교생들의 촛불집회가 광화문에서 열렸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경찰버스가 광화문 일대를 둘러싸고 있었고 학생들을 자극하지
않으려는듯 전경들은 방패와 진압봉 없이 무장해제한 채로 곳곳에 서 있었습니다.
큰 사안이라 토요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언론들의 취재 열기가 대단했죠.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자원봉사단원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스크럼을 짜
학생들의 안전한 진입을 돕고 있었죠. 학생들은 얼굴을 가린채 속속 입장을
했지요. 학교측의 처벌방침에 얼굴이 공개되는 걸 꺼렸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집회와는 달리 학생들을 마주보는 쪽에서 카메라를 드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구요. 무대를 중심으로 양쪽 끝으로 취재진은 밀려났죠.
사다리에 올라 학생들이 촛불을 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가슴에 '자봉단'이라고
써붙인 자원봉사자들의 언론 통제가 대대적으로 시작되더군요.
 
학생들의 얼굴을 찍지마라. 망원렌즈 끼고 찍지마라. 뒤로 나가라.
곳곳에서 기자와 자봉단원들과의 승강이가 벌어지고 고성이 오갔습니다.
심지어는 카메라 앞을 손으로 막는 아주머니 자원봉사자도 있더군요.
(기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행위지요. 가끔 돌아버리기도 합니다.) 

현장에 있는 사진기자와 자봉단원들 사이에 반복적으로 오간 얘기는 대충 아래와 같습니다.

"얼굴 찍지마라."

"학생들의 얼굴을 찍으려 하는게 아니다."
"행여 얼굴이 나오면 모자이크 처리하겠다"

"아이들이 죄인이냐? 모자이크 처리할려면 사진찍지마라."

"아이들이 죄인이라 한적 없다. 왜그리 통제하냐? 아이들이 모인 이유를
보도해야하지 않느냐?"


"아이들이 싫어하지 않냐?"(아이들보다 자봉단원들이 병적으로 싫어하는 모습이었는데..)

"플래시도 안 터뜨린다. 뒷모습이다.(찍힌 사진을 보여주며) 봐라"

"잘 찍었네. 그만해라"

"싫다. 사진 찍어야 하는게 일이다. 월급줄거냐"

"못준다"

이런 말다툼이 2시간 가량 됐죠.
이쯤되면 논리도 없고 심하게는 멱살잡이까지 가기도 했죠.


아이들의 얼굴이 나왔을 경우 받게될 불이익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사진기자들이 민감합니다. 그정도의 상식으로 취재하는 사람들이구요.
너무 머리 아픈 취재였지요.

두발제한폐지를 위한 학생들의 집회도 예정되 있는 상황이구요.
또 이런식의 취재라면 꺼려지는데요. 아이들 앞에서 보여줄 만한
어른들의 모습도 아니구요.

왜그리 믿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왜그리 믿음을 주지 못했을까 하는 반성도 해봅니다.

제발 손으로 렌즈만은 막지마세요. 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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