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근 생활 1년을 하고 다시 현장에 ‘복귀’했습니다.
첫날 일정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를 만들고 판매한 기업의 전직 대표들에 대한 1심 선고였습니다.
재판을 앞두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관련 단체 활동가들이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고, 법원 관계자들이 청사에서 집회 금지 등의 규정을 근거로 회견을 막으면서 승강이가 벌어졌습니다. 이 과정을 카메라에 담다가 낯익은 얼굴이 보였습니다. 조순미씨. 2019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사진다큐를 하며 그를 만났습니다.
나를 기억할까, 마스크까지 썼으니 알아보겠나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나온 현장의 서먹함에다가 다툼이 벌어진 상황에 인사 할 생각은 못했습니다. ‘기자회견 하면 안 된다’ ‘매번 해오던 거다’ 승강이는 이어졌고, 파인더에서 눈을 잠시 뗀 순간에 그의 시선과 마주쳤습니다.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 눈은 “오랜만이네요”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제야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잠시 반가웠고, 쭉 민망했습니다. 시간이 흘렀고 공간이 바뀌었을 뿐 피해자의 외침은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신문 게재를 목적으로 다큐를 한 이후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는지, 전화를 걸어 안부라도 한번 물었는지, 스스로에 물으며 자책했습니다. 다큐 한번에 현실이 크게 바뀔 리는 없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은 현실을 또렷이 확인하는 순간에는 부끄러움이 솟습니다. 어쩌면 조순미씨가 나의 얼굴을 알아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심 재판이 열렸습니다.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서울중앙지법은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사인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의 전직 대표들에게 무죄를 선고 했습니다. ‘가습기메이트’의 특정 성분에 의한 피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었습니다.
선고 후 다시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피해자 조순미씨는 재판 결과에 분노했습니다. "내 몸에서 일어난 일이 증거입니다.” 그는 울었습니다. 2년 전 찍었던 사진에도 그는 울고 있습니다. 서글펐습니다. 긴 시간 투병하며 고통의 시간을 살아낸 피해자들은 있는데 책임지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이 사회는 그 책임을 지울 수 없는 구조로 지어져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상처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의 소외된 목소리와 모습을 사진에 담겠다고 다짐은 해봅니다만, 무력감과 회의감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머뭇거리게 됩니다. 이런 걸 걷어내야 ‘진짜’ 사진 찍는 일이 가능할 텐데 말이지요.
현장에 나오자마자 조순미씨를 만나게 된 것은 어떤 메시지일까, 곱씹고 있습니다.
yoonjoong